얼마전 일요일엔 성탄절을 앞두고 아내가 다니는 교회를 갔다.
출산 후 거의 3 개월간 교회를 가지 못했던 아내는 매우 즐거워 보였다. 이제 3 개월이 채 안된 ‘새벽’이를 가슴에 꼭 안고 가는 아내는 행복해 보였다.
둘째 아이 출산 후 병원외에는 외출을 하지 않았던터라 더욱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런 아내와 함께 교회를 가던 나는 걱정 아닌 걱정이 하나 있었다.
아내가 교회를 갈때마다 받는 점자 주보 때문이었다. 아내가 다니는 교회는 신자가 약 70 여명 정도 하는 규모의 작은 교회다. 신자의 대부분은 노인들이 많다. 이 교회에서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내뿐이다.
아내를 위해 매주 교회의 주보를 점자로 만들어 주고 있다. 신자 몇 사람이 점자를 익혀 서로 번갈아가며 매주 점자 주보를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내의 경우 아이 키우랴, 연구등으로 바쁜 일정으로 인해 매주 교회를 갈수가 없다. 그런데도 점자 주보는 매주 만들어진다.
특히 이번 주는 거의 3 개월간 가지 못했었고 또 못간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없었다. 당연히 매주 점자주보는 오지 않는 주인만을 기다렸을 터였다. 단 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는 점자 주보의 존재 역시 소중하지만, 그 한 사람도 언제 올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만들어 주고 있는 분들의 수고에 정말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이다. 그렇다고 교회를 예약하면서 갈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본에 살면서 이런 저런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냥 흔히 자원봉사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할 자원봉사에 대하여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는 것이다. 아내의 교회에서 단 한 사람 뿐인 시각장애인을 위해 매주 소중하게 점자를 찍어 주시는 분들중에는 연세가 70이 넘으신 분도 계시다. 그 분도 자원봉사를 위해 점자 공부를 하셨다.
또 구청 자원봉사 센터를 통해 알게 된 한 일본 여성은 우리 부부가 제일 필요한 서비스가 아이의 동화책에 점자를 찍는 것이라고 하자 그때부터 점자를 익혀 상당량의 그림책을 점자 그림책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처럼 일본의 자원봉사자들은 서비스를 필요로하는 사람이 원하는 내용을 위해 공부하고 배우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경우에는 웬만한 전문가들보다도 훨씬 전문적 지식을 갖춘 자원봉사자들이 많다. 파나소닉에 근무하는 신무라 타카코(41)도 그런 사람중 한 명이다.
신무라씨는 파나소닉의 무역 파트에서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정신 없이 바쁜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그녀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도쿄도 시청각장애인 모임에 반드시 참석해 통역 서비스 자원 봉사를 한다.
그녀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시청각장애인 모임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시각과 청각을 모두 상실한 장애인들이 모임을 갖는 곳이다.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시청각장애인들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려면 누군가 곁에서 서로의 말을 전달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 통역 서비스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시청각장애의 유형에 따라 청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수화를 만져서 이야기를 하는 방식인 ‘촉수화’라는 방식을 사용하거나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점자를 시청각장애인의 손가락에 타이프 치듯히 터치하는 ‘손가락점자’라는 방식등 일반인들은 그 존재조차 알수 없는 방식들이 이용된다.
신무라씨의 경우는 촉수화나 손가락점자 방식 모두 전문가 수준의 능력을 보이며 언제나 통역 서비스에 참가한다. 한달에 한 번만이 아니다. 매년 열리는 ‘시청각장애인 대회’ 참석을 위해 1 년에 한번 뿐인 자신의 여름 휴가를 기꺼이 사용한다.
자원봉사를 위해 여름 휴가 뿐만 아니라 참가 경비(약4-5만엔 정도)도 자신이 직접 지불해가면서 말이다. 그런데 신무라씨와 같은 케이스가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과 경제적인면만 아니라 서비스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익히기 위한 노력에도 열심이다. 적어도 내가 만난 자원봉사자들은 그랬던 것 같다.
나는 한국에서 회사에 다닐 때 고아원을 찾는 모임에서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한달에 한 번 자매 결연을 맺은 고아원을 찾아 아이들과 놀아 주는 모임이었다. 그때 나를 비롯한 회원들이 실제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 보면 부끄러울 따름이다.
우리들이 했던 것은 한 달에 한 번 방문해 한끼의 밥을 만들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이 전부였다. 가끔 빨래나 청소를 하기도 했지만 그 역시 고아원에서 아이들에게 하고 있는 것을 도와주는 수준에 머무르는 정도였다. 물론 모든 자원봉사자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상당수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자원봉사는 특히 ‘밥해주기’가 많은 것 같다. 지금까지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했으니 그럴만도 하지만 이제 그 먹고 사는 문제는 자원봉사가 아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같은 공공적 책임이 되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내가 고아원 아이들을 위한다는 활동을 한 기간 동안 아이들의 심리상태를 이해하기 위한 단 한권의 책도 읽은 기억이 없다.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뭔가 해보겠다는 마음은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마음이 중요하겠지만 마음만 가지곤 곤란하다. 특히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하는 사람들을 대할때는 더욱 그렇다. 마음과 함께 정말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알고 그에 맞는 기술과 전문적 지식도 함께 갖추어야만 보다 효과적인 자원 봉사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