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이 글은 일본출산기 중 '일본인 남편과 결혼하기 시리즈 마지막편'입니다. 앞부분을 읽지 않으면 이해가 안될 수도 있으므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4년이 지났다. 평온한 날들이다. 그가 과묵하다 보니 말이 씨가 되어 싸움이 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고, 그가 재미난 여자, 명랑한 여자를 좋아하다 보니, 난 늘 그를 웃기기 위해 노력중이다. 둘 다 일을 하다보니, 가사는 반반씩 담당하는 편이다. 20살부터 혼자 살아온 그는 요리도 꽤하는 편이고, 성격이 꼼꼼해서 빨래를 개는 건 나보다 낫다.
한국인과 결혼해보지 않아서, 한일을 단순하게 비교하는 건 아무래도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싶다. 그치만 한일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을 듯 싶다. 한국처럼 명절 때 며느리가 밥하느라 정신없이 보내는 일이 없고, 일본남자들은 하숙을 오래 한 사람들이 많아 요리를 다들 잘한다. 그 정도의 지식밖에 없다.
여하튼 잠깐이라도 해외에 나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알겠지만, 한국과 일본은 가장 닮은 나라다. 해외 유학생들만 봐도, 한일커플이 흔하고, 한일 학생들이 친하게 지내는 이유는 그들이 자란 환경이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내 어떤 친구는 모국어가 다르단 이유로 결혼을 다시 생각하라고 충고했다. 정작 결혼하는 건 나인데 나와 우리 가족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걱정을 했다. 그러나 그가 한국말을 못한다고 해서 그게 내 가슴을 찢어놓을만한 결점이 될 수는 없었다. 같은 언어를 말해도 가슴에 와닿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모르는 프랑스어를 말해도 왠지 필이 꽂히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말이 안통해 결혼생활이 오래 못가면 어쩌지?
글쎄다. 중요한 건 가슴이지, 말이 아니다. 더불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불행에 대해 걱정만 하는 머리는 더더욱 아니다. 어차피 헤어질 인연이라면 그건 언어가 아니어도 헤어지게 마련이다. 성격차일 수도 있고, 헤어질 운명일 수도……. 같은 나라 사람끼리 결혼해도 헤어지는 게 인생 아닌가. 남들은 국제 결혼이라 하지만, 내게는 그냥 연인이자 인연이었던 것이다.
그는 하루마와는 달리 170도 안되는 키에, 장동건처럼 생기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그에겐 뭔가가 있다고 느꼈고, 그게 사랑이지 싶었다.
사실 결혼식 때 그는, 여러번 깔창을 깐 구두를 신으란 소리를 들었다. 그와 내가 키가 비슷하다보니, 내가 하이힐을 신으면 그 사람보다 키가 더 커보였다. 그치만 그는 전혀 연연해하지 않았고, 나 역시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외모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개성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키가 작아도 깔창 구두만은 신지 않겠다는 그가 나는 좋았다. 그에게 키만 멀대같이 큰 위너가 되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대머리를 감추려고 바코드를 그린 사람보다 박박 밀어내는 용기가 좋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고, 늘 내 좋은 것들만 남들에게 보이고 사랑받고 싶지만, 결국 타인이란 만남과 떠남의 연속에 자리할 뿐이다. 평생 날 안고 살 사람은 나임으로, 자신의 모든 모습에 당당하면 그만 아닐까.
‘사랑은 서로가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라고 칼릴 지브란이 말했다. 정채봉 아저씨도 같은 말을 했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사랑에 있어 꼭 이 말을 곁들인다.
그래, 사랑은 서로가 마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갈 때 비로소 그 힘이 최대한 발휘되는 것이다. 4년을 사귀었고, 결혼하고 4년이 지났다. 여전히 그는 과묵한 남편이고, 난 밥도 잘 못하면서 괜히 부엌에서 노래하고 춤이나 추는 웃기기만 하는 아내다.
그리고 이제 아이가 태어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