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가 안되면 한국 가야죠"
12월 어느 날, 일본전문학교에서 it 계열 전공을 하고 있는 한국 남학생이 말했다. 3년전 일본취업의 꿈을 품고 유학왔다는 그는 반쯤 포기한 듯한 얼굴이었다.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는 한국학생수는 대략 1만 7천여명(
2008년 일본학생지원기구 조사). 한해에도 2만 명에 가까운 한국학생들이 일본으로 입국하고, 유학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일본 취업을 희망하고 있지만, 유학생 취업은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닌 듯하다.
올해 일본에서는 취직 및 대학원 진학을 하지 않고 졸업하는 대학생이 10만 명에 이른다. 즉, 대졸백수가 10만 명이 넘는 것이다. 이 수치는 6년만으로 일본 미디어들은 올해를
"취업빙하기를 넘어 초(超)빙하기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대학생 신입사원 내정율. 지난해에 비해 -7.4% 떨어졌다. 취업빙하기라고 불리운 98, 99년 보다 감소폭이 크다 | |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학생들은 더욱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 2008년부터 급등한 엔화의 영향으로 엔화가 가장 쌀 때보다 두 배나 뛰어올랐다. 울며 겨자먹기로 두 배의 수업료를 내고 학교를 다닌 유학생들에게 유래없는 취업난까지 겹치자 본전도 못 건지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늘었다.
일본인들도 취업하기 어려운 시기에, 100% 의사소통이 어렵고, 외국인 고용을 위한 행정적인 문제 등 여러가지 핸디캡을 가진 유학생들을 일부러 고용하는 회사는 적다. 똑같은 성적이라면 외국인이 뒤로 밀리기 마련이다.
유학생들은 졸업하고 나면 천천히 직장을 찾아볼 수도 없다. 학생이라는 재류자격이 없는 이상, 일본을 떠나야하기 때문이다.
청운의 꿈을 품고 온 일본 유학길,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jpnews는 일본 취업을 목적으로 유학온 다섯명의 대학, 전문학교 학생들을 만나보았다. 한국 유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it, 미용, 제과, 애니메이션 전문학교 졸업예정자와 교육학 전공 지방국립대 3학년생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일본 유학의 현실을 들어보고자 한다.
▲ 유학생들이 많이 가는 학교로 알려진 일본전자전문학교 일본전자전문학교 홈페이지 | |
it 붐 타고 거금 들여 유학했더니...첫번째로 만난 유학생은
'그나마 취업이 잘 될 거 같다'라고 생각해 it 계열을 선택했다는 e군(27)이다. e군은 현재 일본전자전문학교 네트워크 보안 전공 2학년으로 올 3월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전문학교 입학 전에는 1년동안 일본어학교를 다니며 어학연수를 하고 일본어 능력시험 1급을 땄다. 한국의 대학교에서는 전기공학과를 졸업했지만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평소에 관심이 있던 일본어학원에 다니며 일본 유학을 준비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취업을 하려면 무조건 전문학교 이상은 가야된다" e군의 주변사람들은 이렇게 조언을 해줬다. 사실 일본에서 일본어만 잘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일본어와는 별도로 전문지식이 있어야 일본인들과 경쟁이 가능하다. 조언을 들은 e군은 큰 맘 먹고 전문학교 진학을 결정했다. 진학할 때부터 취업을 염두로 두었던 만큼 취업률이 높은 학교와 학과를 골랐다. e군이 학교를 선택할 때만해도 일본내에서 한국인이 취업하기에 가장 좋다고 여겨지는 분야가 it 였기 때문이다.
e군이 전공한 네트워크 보안은 입학당시만 해도 80% 이상의 취업률을 자랑했고 경쟁률이 높아, e군은 학교만 들어가면 뭔가 될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융위기로 인한 환율상승을 맞은 것이다.
▲ 엔화급등으로 일본을 떠난 유학생도 많다 © jpnews | |
e군이 입학당시만 해도 8~900원 대였던 환율이 1000원을 넘기 시작하더니 가장 높았을 때 1600원 대까지 올랐다. 입학하고 일년도 안돼 환율이 두 배나 올랐다.
"사실, 입학할 때부터 부모님이 학비 걱정을 많이 하셨죠. 그런데, 이대로 한국에 돌아가느니 일본에서 자리잡는 게 낫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결혼자금 미리 낸다고 생각할 테니까 졸업 후엔 알아서 하라고 하셨어요" e군의 경우, 전문학교 학비며 방세를 전부 부모님에게 의존하고 생활비만 아르바이트로 충당하고 있었는데, 환율이 두 배로 뛰자 부모님의 심려는 깊어졌다.
e군이 다니는 전공의 경우, 한 학기 수업료가 56만엔이었고 여기에 부가적으로 방세 5만엔을 부모님이 부담했다. 입학당시 800원 대 환율이라면 원화로 환산하여 수업료가 450만원 정도, 방세가 40만원 정도이지만, 1400원 대 환율이라면 수업료가 780만원, 방세가 70만원으로 오르는 것이다.
e군의 부모님은 싫은 소리를 하면서도
"이 정도 돈을 들였는데 일본 좋은 회사에 취직해야지"라며 기대를 보였다고 했다. e군도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입학 후 한국 학생들과는 어울리지 않으면서까지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전문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전문학교에 입학하는 일본학생들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18, 19세. 한국에서 군대 다녀오고 대학 졸업하고 사회경험까지 하고 온 한국 학생들과는 나이차가 많이 났다.
"사실 일본까지 와서 한국사람하고 어울리면 유학온 보람이 없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한국 사람이랑 안 어울리려고 했는데..." 하지만 일본학생들은 국적도 다르지만 나이 차이도 많이 나기 때문에 친해지기 어려웠다고 한다. it 전공이다 보니 매니아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도 많았고, 일본인 특유의 앞에서는 잘해주지만 마음을 터 놓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 친구는 될 수 없었다.
게다가 일본 학생들과 어울리다 보면 한국 유학생들만이 가지고 있는 정보에 늦어지는 것도 문제였다고 한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알아야하는 지식이나 정보가 친한 한국인 유학생들 사이에서만 흘러, 결국 한국인은 한국인끼리 몰려 다니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학생활을 만끽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변했다. e군이 전문학교 1학년을 다니고 있던 2008년, 일본에서 it 붐이 사라지고 있었다.
2008년 리먼 쇼크후, 많은 it 회사들이 신입사원 모집은 커녕 문을 닫아버렸다. e군이 다니는 학교의 평균 취업률은 80%가 넘었지만, 2008년부터는 모집하는 규모 자체가 줄어버렸으니 학교 취업 서포트 센터도 손을 놓았다.
같은 클래스에서 취업한 학생들은 절반 정도이고, 그 중 유학생은 20%도 안된다고 했다.
"일단 한국사람은 군대 갔다가 대학교 졸업하고 오니까 나이가 많잖아요. 나이도 많은데 경력도 없으니까 한국 사람은 밀리는 거죠. 나이많은 신입을 어느 회사에서 뽑겠어요?" 한국에서 경력을 쌓고 오지 않으면 it 분야에서 취업될 확률은 극히 적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몇 차례 면접을 봤지만, 1차에서 모조리 떨어졌다. 어린 일본 친구들과 우르르 들어가는 그룹 면접에서 일본인보다 자신있고 똑똑하게 일본어로 자신을 어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e군이 경험상으로 느끼는 유학생 면접통과기준은
'1. 일본어 의사소통능력이 어느정도 되나 2. 관련 경력을 가지고 있나 3. 자격증을 실무에서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가' 등이라고 했다.
취업이 안되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e군은 "반은 포기하고 있어요. 계속 안되면... 한국 가야죠. 비자가 끝나는 데..." 라고 말했다. 유학생들은 학생자격으로 일본 장기 체류가 허용된다. 학교를 졸업하면 취업을 해서 직장인 비자 체류로 바꾸거나 돌아가는 수 밖에 없다. 일본 유학을 후회하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e군은 말했다.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시기를 잘못 만나서 그렇지. 2년만에 이렇게 세상이 변할 줄은.." 그리고 그는 앞으로 일본 유학을 예정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목적을 가지고 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막연히 가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오면 망해요" 라고 따끔하게 조언을 했다.
▲ 헐리우드 뷰티 전문학교 © 헐리우드 뷰티 전문학교 홈페이지 | |
미용대국 일본? 유학생 취업률 0% 가까워...두번째로 만난 유학생은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있는 헐리우드 뷰티 전문학교 미용과 2학년에 재학중인 k양(29)이다. k양은 한국에서 맛사지 및 네일아트를 배운 경력이 있고, 어머니가 일본에 오래 살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일본 유학을 오게 되었다.
"꼭 전문학교에 가야한다기보다는 일본에 있고 싶었어요. 한국에서 잠깐이나마 미용을 배운 적이 있어서 미용전문학교를 택하게 됐구요" k양은 2006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2년간 일본어학교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2008년에 미용학교에 입학했다.
전문가를 양성하는 학교인만큼 이 곳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미용사 자격증 취득을 목적으로 한다. 일본 헤어스타일리스트 및 미용사는 반드시 미용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미용사 자격증 시험이 미용학교 학생 및 졸업생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1학년 때는 네일아트, 메이크업 3급과 기초 에스테틱, 헤어, 기모노 입히는 것을 배운다. 2학년 때부터는 헤어 이론 및 실습, 본격적인 미용사 자격증 시험 준비를 하게된다. 결국 미용사 자격증이 취업여부의 관건이기 때문에 모두들 졸업전에 시험 준비하느라 바쁘다고 한다.
"일본 사람하고는 비슷한 것 같지만 기본 생각 자체가 달라요. 성격부터 식습관까지.. 일본애들은 개인적이죠. 일본인의 좋은 점이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조금 늦은 나이에 입학하게 된 k양은 다른 일본 학생들에 비해 열 살이나 많았다. 때문에 처음부터 친구를 사귀겠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국적이나 나이차이도 그렇지만, k양의 관심사가 취업과 아르바이트라면, 일본 학생들은 이성친구나 연예인에 관심이 있는 등 생각하는 것이 전혀 달랐다. 같은 클래스 일본 학생 중에는 한국을 무시하는 이들도 있어, 한국에 다녀왔다고 한국 과자나 초콜릿 등을 돌리면 받는 척하면서 먹지는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다 그런 건 아닌데. 무시하는 애들이 있어요. 유학생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한국 사람들은 자기가 사 와도 같이 먹자고 그러잖아요. 근데 얘들은 그런 말 한마디를 안해요. 그리고 먹으라고 하면 딱 한 개만 집는거 있죠?" 메이크업과나 패션과에는 한국 유학생이 몇 명 있지만, k양이 다니는 미용과에는 유학생이 거의 없다. 한국인은 일본 미용실에 취직할 수 없는 것이 하나의 이유이다.
▲ 일본 미용실에서는 한국인을 채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jpnews | |
k양은 일본 미용실에 한국인이 취업을 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했다. 일본에도 미용 쪽에 우수한 인력이 많은데 굳이 외국인을 고용할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손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비스직에 실수를 할 염려가 있는 외국인은 채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취업 가능성이 없는데도 그 많은 한국 유학생들은 왜 미용분야로 유학을 오는 것일까?
"사실 들어오기 전에는 취업 가능성이 없다는 걸 몰랐어요. 원래 미용실에 취직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외국인은 취업이 안된다니까 황당하죠. 근데 저 말고도 취업문제는 모르고 오는 유학생들이 거의 대부분인 것 같아요. 졸업하면 다들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전혀 다른 쪽으로 취직을 해요. 참, 일본에 있는 한국 미용실에 취직하는 사람들도 있구요"k양에 따르면, 일본인 손님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미용실에는 취업할 수 없기 때문에 한인 전용 미용실에 한국 유학생들이 취업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도쿄 신주쿠나 아카사카 등 한인들이 몰려사는 곳에 미용실이 있는데, 취업은 가능하지만, 미용사 자격으로 비자발급은 안된다고 한다. 한국인은 미용사로 체류자격을 얻기가 어려운 것이다.
"근데 일본까지 와서 한국 미용실에 다니는 건 별로라고 생각해요. 처음에 견습으로 들어가면 월급도 10만엔 될까말까하고. 한국 미용실의 주요 고객은 대부분 룸살롱 아가씨들이기 때문에 거의 똑같은 머리만 하게 되고. 발전이 없어요."k양은 어떻게든 체류자격은 얻을 수 있더라도 일본내 한국 미용실에서 일하는 것은 싫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아르바이트로 몇 번 일해보기도 했지만, 취직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k양이 다니는 학과의 학비는 3개월에 44만엔, 1년이면 한화로 약 2천만원이 넘는 돈이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학비를 들이고도 대부분의 미용 유학생들이 현지취업이 안된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 때문인지 일본 유학의 가장 어려운 점에 대해 k양은 '돈 문제'를 꼽았다.
k양의 경우, 부모님과 자신의 아르바이트로 학비, 방세를 조달하고 있는데 학비가 워낙 비싸다보니 학교 끝나면 거의 모든 시간을 아르바이트로 할애하고 있다. 그나마 2008년 엔화급등으로 인한 유학생 타격을 생각하여 학교 측에서 학비 분할 납부 및 장학금 제도를 실시하고 있어 간신히 학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k양은 이번년도에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졸업할 수 있지만, 1년 연장하여 네일아트 고급 코스 수업을 들을 예정이다. 학비는 버겁지만, 이왕 미용쪽을 공부하고 있는 이상, 헤어부터 네일아트까지 완벽하게 공부해서 자신의 숍을 내기 위해서다. 네일아트는 세계최고 수준이라고 인정받는 일본이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4년간 자신의 유학생활을 되돌아보면 '학교다니고 아르바이트한 기억밖에 없다'는 그녀. 앞으로 일본 유학을 생각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아무 생각없이 일본에 오는 사람이 없었으면 한다. 꼭 하고자 하는 게 있는 사람,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만 성공한다. 목적없이 놀러다니기만 바쁜 유학생은 한국 망신만 시킨다"라고 따끔하게 한 마디를 던졌다.
▲ 안되는 취업을 기다리는 대신 자신의 네일샵을 내고 싶다는 k양- 사진은 이미지입니다- ©jpnews | |
* 2부에서는 제과, 애니메이션, 국립대 교육학 전공 유학생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2부는 여기::: 일본 유학생들 충고 "쉽게 생각하고 오면 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