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穂.55세) 사민당 당수. 아니 28일 오후 8시까지만 해도 하토야마 내각의 소비자・소자화담당 장관 신분이었다. 그런데 하토야마 수상에 의해 전격 해임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인기는 현재 급상승하고 있다.
28일 저녁, 수상관저의 주변이 매우 어수선했다. 하토야마 수상을 비롯한 내각 전원이 모였다. 뿐만 아니라 7시에 예정돼 있던 하토야마 수상의 기자회견이 특별한 설명없이 9시로 연기되었다.
따라서 일본기자들의 발걸음도 분주해졌다. 기자회견 연기이유를 취재하기 위해 내각 멤버인 장관들의 소매를 붙잡고 늘어졌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단 한마디 '기다려 달라'라는 말뿐이었다.
그 사이 하토야마 수상은 후쿠시마 소비자 장관과 단독으로 마주앉았다. 후텐마 미군기지의 오키나와현내 이전 찬성에 대한 서명을 받기 위해서였다. 하토야마 수상은 같은 내각으로서, 그리고 같은 여당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오키나와현내 이전의 불가피함을 설명하고 후쿠시마 장관에게 찬성해줄 것을 간곡하게 요청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장관의 의사는 확고했다. 수십여차례 하토야마 수상의 간절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장관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입술이 바짝 마를 정도로 애간장이 타는 하토야마 수상을 향해 그녀가 한 말이라고는 "오키나와 현민을 배신할 수는 없습니다!"라는 것이 전부였다.
결국 하토야마 수상이 굳은 얼굴로 임시내각을 소집하고, 이어서 후쿠시마 장관의 해임사실을 발표했다. 이 같은 사실은 즉각 '속보' 형태로 실시간으로 일본 전국에 보도되었다.
최근 하토야마 내각의 지지율은 최악이었다. 28일에는 하토야마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국민이 89%에 이른다고 보도하는 언론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하토야마 수상은 날이면 날마다 달라지는 일기예보처럼, 수상의 말도 매일같이 달라진다고 주류 일본언론들은 비꼬았다.
하토야마 수상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그의 '우유부단함'. 학자 출신으로 세파에 시달려본적이 없는 부잣집 아들인 그는, 권모술수와 정적들과의 이전투구가 난무하는 막장 같은 정치판에 쉽사리 길들여지지 않았던 세습정치인중 한명이었다.
정치자금은 돈많은 그의 어머니가 알아서 챙겨주었고, 결혼도 남편있는 여성을 좋아해 어머니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결국에는 이혼케 하고 자기 부인으로 만들었다.
야당이었던 민주당 시절에도 크나큰 부침은 없었다. 민주당 대표로서 당시 여당이었던 자민당과 사사건건 대립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야당시절에는 정치인으로서 정책이 실현되지 않아도, 공약이 실제 텅빈 공약(空約)으로 끝나도 야당이니만큼 현실적으로 책임져야 될 일이 없었다.
그러나 한 나라를 책임져야 할 수반으로서의 그 책무는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우선 정책실현은 물론 그 실책까지도 수상이 떠 안아야 한다. 그리고 국제 외교관계까지 염두에 두고 실익을 따져야 한다. 이는 아무런 책임이 따르지 않는 야당시절과는 전혀 다른 입장인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딜레마를 하토야마 수상이 일본국민들에게 온몸으로 실천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 한예가 현재 일본 정국을 들끓게 하고 있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문제에 대한 갈지자 행보다.
그렇지만 이런 갈지자 행보도 힐러리 로댐 클린톤 미국무장관이 지난 21일, 3시간 15분간 일본에 머물면서 하토야마 수상과 미일정상회담을 통해 담판을 지음으로써 끝이 났다. 이에 대해 일본언론은, 힐러리 국무장관이 그 후 중국에서는 3박 4일간 체류했음을 상기시키며, 미국이 그만큼 일본을 무시하고 있으며, 일본에 머물렀던 그 3시간 15분도 오로지 오키나와 미군기지에 대한 압력을 가하는 시간이었다고 맹렬하게 비판했다.
그런가하면 오키나와 현민들은, 미국의 압력에 하토야마 수상이 굴욕적으로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냐고 맹반발했다. 실제로 하토야마 수상은 28일 오전,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오키나와 현내 나고시 헤노코지역으로 이전한다고 정식으로 발표를 했다.
물론 하토야마 수상이 그동안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직접 오키나와를 방문하여 오키나와지사 및 해당지역의 자치제장들을 만나 설득을 했지만, 그러나 결과는 찬성은커녕 오히려 반감만 불러 일으켰다.
후쿠시마 장관 또한 오키나와를 방문, 도지사와 단체장, 현민들을 만나 그들을 위로하고 마지막까지 그들과 함께 할 것이라는 다짐을 했다. 하토야마 수상과는 정반대로 오키나와현민들을 절대로 배반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같은 후쿠시마 장관의 행동은 곧 하토야마 정권과 극한 대립관계를 공식적으로 언론에 노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바로 이같은 정책대립이 마침내 28일 저녁 후쿠시마 장관의 해임이라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덕분에 하토야마 정권의 연립내각이 와해위기에 놓여지게 됐다. 뿐만 아니라 일본언론에서는 벌써부터 하토야마 수상의 사임문제까지 거론되고 있다.
한편, 후쿠시마 장관의 해임에 대한 일본국민들의 반응은 하토야마 수상 비판 일색이다. 한 민방 tv의 도쿄거리 인터뷰에서 어느 일본인은, "하토야마 수상이 수상으로서 확실한 결단을 내린 것은 후쿠시마장관 자른 것이 거의 유일하다"고 비꼬았다. 또 다른 일본인은 "적어도 후쿠시마 장관처럼 하토야마 수상은 단 한가지라도 일관된 정책을 지켜나가라" 고 질타했다.
▲ 후쿠시마 미즈호 사민당 당수 ©jpnews/山本宏樹 | |
덕분에 후쿠시마 사민당 당수의 주가는 28일 해임된 이후 급상승하고 있다. 29일 일본의 6대일간지 톱뉴스는 모두 후쿠시마 당수의 해임에 대한 보도였고, tv에서는 '후쿠시마 당수 모시기' 경쟁으로 뜨겁게 달아 올랐다. 하루 아침에 차기수상 후보로 거론될 만큼 후쿠시마 사민당 당수가 '거물정치인'으로 떠오른 것이다.
수상 취임이후 정책 사안 하나하나에 갈지자 행보를 일삼아 온 하토야마 수상에 비해, 비록 일본국민적 정서와는 다소 떨어진 사민당의 당수이긴 하나,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문제를 둘러싸고 보인 그녀의 일관된 태도는, 차기 수상후보감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마저 대두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럼 하루 아침에 '거물정치인'으로 떠오른 후쿠시마 미즈호 당수는 과연 누구인가?
그녀의 전직은 변호사로 미야자키현 출신이다. 80년 도쿄대학 법대를 졸업하고 84년에 사법고시를 패스했다.
98년 참의원 당선으로 정계에 입문하기 전까지 후쿠시마 당수는 인권변호사로, 그리고 패미니즘의 선두주자로 일본여성계에서 그 명성을 떨쳤다. 그녀가 정계에 발을 내디딘 계기는 사민당의 대모라 할 수 있는 도이 다카코 전 사회당(현사민당) 대표의 권유 때문. 헌법학자 출신으로 80-90년대의 사회당을 쥐락펴락했던 도이 다카코씨의 강력한 권유에 의해 정계에 입문한 그녀는, 2001년 사민당 간사장을 거쳐 2003년부터 당수가 되어 현재 사민당을 이끌고 있다.
사민당의 정책은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주의 정책을 당론으로 삼고 있다. 때문에 지금은 야당이 된 자민당과 사사건건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과의 유대관계도 깊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다보니 북한과 정치적 노선이 비슷하다. 그래서 조총련 행사장에도 곧잘 얼굴을 내민다. 이로 인해 북한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일본 우익으로부터 사민당도 함께 비판을 받을 때가 많다.
한국과의 관계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연대가 깊다. 한국시민단체와 연계하여 일본에서 진행되는 재판과 항의데모 등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여성문제에 대한 의식도 강해서, 그녀 자신은 기존의 일본여성들처럼 남편 성을 따르지 않고, 본래의 자신의 성을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 호적에 입적하지 않고 그냥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같은 후쿠시마 당수의 유일한 단점은, 한 정당을 이끌어 나가는 당수임에도 불구하고 일본국민들에게 어필되는 이미지는 아주 미미하다는 것. 실제로 기존의 이미지는 후쿠시마 미즈호 하면 변호사 출신의, tv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 '아줌마 정치인' 정도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후쿠시마 당수가 일약 '일본국민적 마돈나 정치인'으로 떠오른 것은, 역설적이게도 하토야마 수상 덕분이었다. 하토야마 수상이 실정을 거듭할 수록 그녀의 확고하고도 단호한 태도와 행동이 일본언론에 더욱 부각된 것. 그 결정체가 바로 28일, 일본정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였다.
아무튼 현재 일본은 하토야마 대 후쿠시마 정국으로 매우 시끄럽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해임'이라는 칼을 휘두른 하토야마 수상은 각계각층으로부터 매서운 비판과 비난을 모조리 받고 있고, 반면 장관직으로부터 '잘린' 덕분에 후쿠시마 전 장관은, 하루 아침에 일약 '수상후보감'으로까지 정치적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한편, 일본언론은 이대로 가면 하토야마 내각이 오는 7월의 참의원선거에서 전멸할 것이라는 논조의 기사를 연이어 내보내고 있다.
이는 결국 하토야마 수상의 사임이라는 애드벌룬을 일본언론이 먼저 띄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