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 자살한 사람까지 있다. 스모계의 도박습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일본 국기로 불리는 스모계가, 시사종합주간지 '주간신초'의 도박파문 특종기사(5월 20일 발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 불상사가 끊이지 않고 있는 일본스모협회. 과연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jpnews/야마모토히로키 | |
이 주간지는 "일본 스모계의 중추인물 및 현역 스모선수들이 야쿠자가 주도한 야구도박 등에 관여돼 있다"며 약 열 명의 스모선수 및 관장 이름을 실명공개해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현역 오제키(大関) 고토미쓰키(琴光喜)를 비롯해 도키쓰카제 관장, 사도카다케 관장, 마에가시라 1번째 서열인 도요노시마 등 일본 스모계의 유명인사들이 야쿠자가 주도하는 야구도박 등에 상습적으로 참여했다고 이 주간지는 전했다.
이 기사가 나오자 마자 이름이 거론된 당사자들은 "절대 그런 일 없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뚜렷한 법적조치를 취하지 않아 의혹이 증폭됐다.
결국 6월 중순 일본스모협회는 이사회를 개최해 "야구도박에 29명, 화투도박에 36명이 관여돼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며 "경시청의 수사가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또한 오제키 고토미쓰키는 자기 입으로 직접 "야구도박에 관여했다"라고 말했다.
천하장사에 해당하는 요코즈나 다음 반즈케(番付, 스모서열)인 현역 오제키가 폭력단이 개입된 야구도박에 깊숙히 관여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일본 스모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 충격은 서막에 불과했다.
6월 18일, 이번에는 오제키까지 올랐던 미야비야마(雅山)가 야구도박에 관련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문제는 미야비야마가 소속돼 있는 무사시가와베야(武蔵川部屋)의 관장이 현 스모협회 무사시가와 이사장이라는 점이다.
일본스모협회는 '헤야'(部屋)의 관장들이 이사회를 꾸리고 있다. '헤야'는 일종의 도장으로 스모경기에 출전하는 스모선수들은 반드시 이 '헤야'에 소속돼 있어야 한다. 이들 관장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스모협회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데 이 이사회의 최고권력자가 무사시가와 이사장이다.
무사시가와 이사장의 제자가 야구도박에 관련돼 있다면 관장의 지도책임이 문제시된다. 게다가 그는 제자의 도박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은폐하려고 했다는 의혹마저 일고 있다. 스모협회 외부감사를 맡고 있는 요시노 준 전 경시총감은 주간현대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6월 15일 긴급이사회가 열렸다. 10명의 관장들과 나를 포함해 3명의 외부이사가 참가한 긴급이사회였는데 사도카다케 관장이 고토미쓰키가 야구도박에 관련됐다고 실토했다면서 다음 나고야 대회에 결장시키겠다고 말했다. 그 말이 끝난 직후 다른 이사들이 '그 다음엔 어떻게 할꺼야!'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런데 나는 그 자리에서 무사시가와 이사장이 상당히 초조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뭔가 관련됐구나라는 직감이 들었다." 요시노 씨는 "도박혐의에 대해선 경시청이 조사를 벌이고 있겠지만 스모협회도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관련인사들이 너무 많아 도무지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정석대로 풀자면 무사시가와 이사장은 물론 이번 도박파문의 정점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오타케(大嶽) 관장, 도키쓰카제 관장이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또한 검찰이 '상습적'이라고 판단할 경우 징역 3년이하의 금고형 처벌이 뒤따른다.
문제는 스모계의 도박습성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21일 발매된 사진주간지 플래쉬는 올해 2월 니쇼노제키(二所ノ関) 도장의 매니저 이노구치 씨가 목을 매 자살한 사실에 주목했다. 이 주간지의 취재에 응한 스모 관계자의 말이다.
"이노구치 씨는 야구도박에 오래전부터 관여해 왔다가 엄청난 빚을 진 후 이 빚을 갚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도무지 수가 없어 자살했다." 이 관계자는 "빚독촉을 한 폭력단 간부 역시 수금책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책임질 상황을 두려워 해 원래대로라면 직접 협박해선 안되는 현역 스모선수 고토미쓰키에 접근해 도박사건이 드러났다"라고 덧붙인다.
이 폭력단 간부는 전 스모선수 출신으로 그가 폭력단의 사주를 받아 스모계 인사들에게 접근해 도박판을 알선하고 수수료를 떼갔다고 한다. 그의 지령을 받아 온 이가 이노구치 씨였고 지금까지 이노구치 씨가 전면에 나서 스모계 인사들을 도박판에 끌여들였다는 말이다.
이 주간지는 "이런 행위가 적어도 지난 4, 5년전부터 횡행해 왔다"고 말한다. 돈이 부족한 스모인들에게 이노구치 씨가 폭력단 간부로부터 자금을 빌려 융통해 왔지만, 빚수금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폭력단 간부의 협박을 줄곧 받아왔고 이를 견디지 못해 결국 자살했다는 것이다.
폭력단 간부 역시 자기가 책임을 지지 않으려면 직접 스모선수들 및 관장들에게 돈을 받아내야 한다. 그래서 고토미쓰키 등을 협박하기 시작했고 결국 이 일련의 과정이 백일하에 드러나고야 말았다.
사실 스모계와 폭력단의 관계는 떼어놓을 수 없다. 지난 3월 하루바쇼(春場所, 봄대회)에서는 기세 관장이 폭력단 간부들에게 스모협회 간부 지정석 자리를 알선해 줬다는 혐의로 2등급 강등 처분을 받고 도장 문을 닫아야만 했다.
올 2월에는 이번 도박사건에도 연루돼 있는 오다케 관장은 물론 스모개혁을 부르짖고 있는 다카노하나(貴乃花) 관장조차 폭력단 간부와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촬영한 사진이 유출돼 구설에 올랐다.
한편 일부에는 이 모든 원인이 오다케 관장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스모 관계자들은 "오다케 관장의 부친이 이번 야구도박의 실제배후로 지목받고 있는 모 폭력단에 소속돼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폭력단은 구단간의 핸디캡을 설정하고 배당률도 조정하는 등 야구도박에 관한 한 유명한 조직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다케 관장은 어렸을 때 부터 이 조직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야구도박에 빠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이미 형성돼 있는 셈이다. 고베에선 유명한 이야기다." 고베라면 일본 최대의 폭력조직 '야마구치구미(山口組)'의 텃밭이다.
스모의 기원을 따져보면 오사카, 고베 등 지역에서 발흥한 흥행사업으로 반드시 그 지역 폭력단과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다. 일종의 격투기와 비슷한 개념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후 메이지 덴노가 스모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스모의 위치는 격상됐고 이후 내각부 궁내청을 거쳐 문부과학성이 직속으로 관할하는 '국기'(国技)에 비등한 취급을 받게 됐다.
스모협회 역시 이런 과정속에서 폭력단 근절 캠페인을 벌일 만큼 내부적으로 만연돼 있던 어둠의 세계와의 고리를 끊기 위해 '표면적'으로 노력해 왔고 그 일환으로 외부이사, 외부감사직에 검경 출신 간부들을 임명해 왔다.
그러나 결국 이번 도박파문을 통해 스모계 인사들이 여전히 폭력단과 밀월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전 경시총감 요시노 씨는 "아사쇼류 전 요코즈나의 은퇴 이후 그 인기가 예전보다 못한 스모계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층 더 일본국민들의 외면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한다.
과연 스모계가 어떤 특단의 조치를 내어 놓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