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의 등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 공동행동이 8월 14일 도쿄에서 개최됐다. 이희자 대표(왼쪽에서 두번째), 조각가 긴조 미노루 씨(가운데), 서승 교수(오른쪽에서 두번째) 등이 거리행진 선두에 섰다. ©jpnews/야마모토히로키 | |
올해도 어김없이 야스쿠니 반대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종전기념일을 하루 앞둔 8월 14일 '평화의 등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 행사가 도쿄 나가타쵸 사회문화회관에서 개최됐다. 행사장과 그 주변은 휴가기간(お盆休み, 8월 15일을 낀 휴가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야스쿠니 신사를 반대하는 500여명의 사람들과 이들을 반대하는 우익 200여명, 그리고 이들의 충돌을 막기위해 투입된 수많은 공안경찰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펼쳐지는 연례행사지만 작년보다 격렬한 분위기가 전해져 온다. 한 일본인 참가자가 그 이유를 말했다.
"유럽에서 극우파 의원들이 대거 몰려오니까 마치 자기네들이 외국에도 인정받았다는 걸로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닐까? 안그래도 야스쿠니 신사에서 오늘 우리와 똑같은 시간에 집회가 열린다고 들었다." 또 다른 참가자는 8월 10일 발표된 수상 담화가 원인이라고 한다. 그는 "우익들은 그 담화가 자학적인 담화라고 해석하고 있다"며 "시기적으로 한일병합 100주년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아무래도 적극적일 수 밖에 없지 않겠는냐"고 말했다.
이번 집회는 '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 평화의 등불을 밝히자는 취지의 국제연대운동(한국, 일본, 중국, 대만)으로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저지하기 위해 조직돼 이후 매년 열리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유족 동의없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는 친족들의 명단을 빼 달라는 것이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공동대표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매년 집회에 아버지의 명부를 삭제해달라고 요구한다.
09년에는 직접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해 신사 관계자들과 담판을 벌이기도 했다. 그녀는 1997년에 합사사실을 알았고 그 이후로 계속적인 투쟁을 벌여왔지만 지난 13년간 아무것도 진전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온 한 참가자는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현역 총리대신의 전향적인 담화가 발표되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라는 외침이 아무리 울려퍼져도 유족들에게는 십년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며 "야스쿠니 신사가 유족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때만이 진정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가 열릴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심포지엄 '식민지지배와 야스쿠니', 유족 증언 및 콘서트, 그리고 길거리 촛불행진 등 7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1부 심포지엄에서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학대학원 교수는 "야스쿠니 신사는 아시아태평양전쟁하고만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근대일본의 식민지 제국주의 전체에서 놓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카하시 교수는 "태평양전쟁에서 일제가 일본군 군속, 군인으로 식민지 지역의 청년들을 강제징용해 나중에 그 영령을 야스쿠니에 합사시켰다는 것 자체가 식민지주의와 야스쿠니의 관련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주장했다.
"야스쿠니 신사와 식민지주의의 일체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근대 일본의 역사에 있어 야스쿠니 신사는 식민지 제국을 확대하기 위한 전쟁에서의 전사자와 식민지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군사행동에서의 전사자를 원칙적으로 전부 합사해 왔다. 즉 야스쿠니가 주장하는 '호국영령'들은 결국 '식민지 제국일본'의 발전에 목숨을 마친 전사자들이다." 민족문제연구소 김승태 연구위원도 비슷한 견해를 폈다. 그는 "제국주의 일본의 근간이 된 메이지유신의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서구적 근대화와 일본국새의 보호, 그리고 국민사상의 통일이라는 목표를 동시에 실현시키기 위해 창출된 정치 이데올로기이자 종교 이데올로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바탕위에 등장한 식민지 제국주의 노선은 1894년 7월 러일전쟁의 개시부터 1945년 패전까지 수많은 전사자를 낳았고 이들은 호국영령이라는 이름으로 야스쿠니에 묻혔다"면서 "제국주의 식민지 노선은 결국 야스쿠니 신사로 귀결된다"라고 주장했다.
오후 6시. 갑자기 바깥이 시끄러워졌다.
▲ 집회를 방해하려는 우익단체 구성원. ©jpnews/야마모토히로키 | |
'재일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시민들의 모임'(재특회) 소속회원 150여명이 사회문화회관 홀 바로 건너편에서 길거리 집회를 시작했다.
"조센징들아! 여기는 일본이다! 여기서 나가라!"
"일본인 차별을 관둬라! 재일특권 없애자!"
"대일본을 비난하는 조센징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남경학살은 없었다. 새빨간 거짓말 늘어놓는 지나인 꺼져라!" 이 광경을 보고 있는 김인희(22) 씨는 "안쓰럽다"고 말했다. 그녀는 한일평화 역사기행단의 일원으로 지난 7일부터 오는 17일까지 도쿄 및 오사카에서 체류할 예정이라고 한다. 일본과 한국이 앞으로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는 그녀는 이번에 일본에 와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실 마음이 좀 아프다. 안쓰럽다고 해야 할까? 한국에 있을 때, 그리고 일본에 와서 일본에 대해 정서적으로 분노할 수 밖에 없는 자료, 영상들을 많이 봤다. 하지만 그런 걸 다 감안하고 앞으로는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한일 두 나라가 잘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여기 와서 우익세력들의 저런 모습을 보면 아직 멀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안쓰러움이 밀려온다." 일본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오키나와에서 올라왔다는 조각가 긴조 미노루(71) 씨는 제이피뉴스의 취재에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전장에 차출돼 전사했다. 그의 부친 역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갓 태어난 나를 놔두고 왜 전장으로 나갔을까? 어렸을 때부터 계속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70년 오키나와 코자사건(오키나와 반환직전에 있었던 미군차량 80대 방화사건)을 경험하면서 집단자결사건도 알게 됐다. 그러면서 이 전쟁이 나라를 위한 전쟁이 아니라 천황가문을 지키기 위한 전쟁,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전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억울하게 죽어간 아버지가 너무나 불쌍했고 그 때부터 나는 '전쟁과 인간'을 테마로 삼았다." 재특회 등 우익들의 시위는 집회참가자들의 촛불거리행진이 시작되면서 더욱 격렬해졌다. 4차선 거리를 사이에 두고 '야스쿠니에 평화를!'과 '대일본제국 만세!'라는 외침이 충돌한다. 이 '충돌'은 언제나 그렇듯 종전기념일인 8월 15일에 일시적으로 완성된다.
과연 동아시아에서의 진정한 평화는 가능할까? 그 해답은 또다시 내년으로 미뤄졌다.
▲ 한국에서 참가한 한일평화 역사기행단과 손병휘, 문진오 등이 참가한 미니 콘서트도 열렸다. ©jpnews | |
▲ 7시부터 시작된 촛불행진. 하지만 행진은 우익들의 방해로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jpnews/야마모토히로키 | |
▲ 시위대로 돌진하려다 경찰의 제지에 막히는 우익차량 ©jpnews/야마모토히로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