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8월 15일이 되면 야스쿠니 신사는 참배객들로 북적거린다. (2010/8/15) ©jpnews/야마모토히로키 | |
"조금 있으면 묵념이니까, 담배 피시는 분들 다 꺼주세요." 야스쿠니 신사내
유취관(遊就館) 앞에 있는 휴게소는 담배피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8월 15일은 더 그렇다. 왠지 경건하고 조용할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야스쿠니 신사는 15일이 가장 활기차고 또 그만큼 시끄럽다. 하긴 평일의 300배가 넘는 사람이 모이니 그럴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신사 바깥에서는 숱한 우익 시민단체들이 선전 및 서명운동, 이를테면 '외국인참정권 반대', '위구르, 대만 독립', '파룬궁수행자들에 대한 중국정부 비판', '재일특권 반대' 등을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확성기 소리가 경내까지 들려올 정도니까 엄청난 수의, 아니 어떻게 보면 도쿄내에 존재하는 모든 우익시민단체가 결집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시끄러운 야스쿠니가 딱 한번 조용해지는 순간이 있다.
정오 12시부터 12시 1분까지가 그렇다. 이 1분간은 전몰자에게 보내는 묵념의 시간이다. 묵념 개시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는 순간 모두들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인다. 완벽한 정적이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매미만 제외하면.
주위를 둘러본다. 묵념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보인다. 보통 서양인이 많다. 그들은 그냥 15일의 야스쿠니를 경험하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다. 하지만 동양인이면서도 안 하는 사람이 있다.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물론 일본인일 가능성도 높지만 아무튼 이 묵념시간에 경내에 있으면서 묵도를 하지 않는 것에는 대단한 배짱이 필요하다.
2005년 8월 15일로 기억된다. 기자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8월 15일이 되면 야스쿠니를 찾고 있는데, 2003년과 2004년에는 경내로 들어가지 않았다.
당시 알고 지내던 몇몇 일본인 저널리스트들이 "야스쿠니에 왜 가냐? 취재라도 안 가. 거긴"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한국통으로 유명한 저널리스트 아오키 오사무 씨는 "나는 평생 야스쿠니에 안 갔다는 걸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말까지 했다.
그래도 야스쿠니를 경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기자 나름대로 절충안을 낸 것이 경내 바깥만 돌아다니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일본인들은 도리이(鳥居, 신사입구에 세워진 거대한 출입문)를 지날 때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습관이 있는데, 야스쿠니 신사의 경우 참배를 하지 않더라도 도리이에 고개를 숙인다는 것 자체가 야스쿠니 신사를 긍정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아예 안 간다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경내 바깥도 에너지 덩어리였다.
야쿠자 풍의 우익들은 가장 시원한 입구 오른쪽 매점 그늘을 점령하고 있고, 전몰자 추도 국민대집회는 그 뜨거운 여름에 수백명씩 모아놓고 진행됐다. 야스쿠니 경내로 진입하기 위해 들어오다가 쫓겨나는 좌익 전학련은 도망치면서"이 새끼들! 또 올거니까 두고보자!"를 외쳤다.
성조기와 일장기를 동시에 들고 우리 모두 화합하자고 외치던 미국인은 처음에는 일본인들의 환영을 받다가 어디선가 나타난 우익 할아버지의 호통에 모두의 비난을 듣고, 결국은 경내 바깥으로 쫓겨난다. 이 장면은 리인 감독이 만든 '영화 야스쿠니'(2006)에도 수록돼 있는데 기자도 이 현장에 있었다.
2년간 그러다 보니 경내가 궁금해졌다.
▲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는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다. ©jpnews/야마모토히로키 | |
05년 8월 15일 경내에 발을 내딛는 그 때 심정은 지금도 기억난다. 도리이 앞에 서서 고개를 꾸벅 숙이는 일본인 옆을 지나 당당하게(하지만 심장은 두근두근거렸다)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별 것 없었다. 경내는 경외와 비슷했고, 흡연소에는 담배피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마치 화재라도 난 것처럼 엄청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것도 참배본전 바로 앞, 유취관 입구 옆에서 말이다.
하지만 정오가 되면 경내는 삽시간에 조용해진다. 마치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이다.
11시 55분부터 담배피는 사람들은 담배를 끄고 먹고 있던 보리차 물을 뿌려 화재(?)를 진화한다. 그 보리차를 서비스하던 신사의 젊은 미코(巫女, 신사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추도식입니다. 당분간 서비스를 중지합니다"라며 부동자세를 취한다. 험악한 인상의, 다른 단체들과 교류를 나누고 있던 야쿠자 풍의 우익들도 부하의 귓속말을 들은 후 시계를 한번 보고서는 대화를 멈춘다. 이 모든 것은 물론 12시에 진행될 묵념을 위해서다.
처음 경내로 들어갔던 2005년 8월 15일, 기자는 묵념을 하지 않았다. 그냥 눈을 뜨고 서 있으면서 정적으로 가득찬 주위를 둘러봤다. 1분이 지나자 기자 옆에 있던 일본인이 "자넨 왜 묵념을 안 하나?"라고 물어왔다.
이렇게 물어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걸 나중엔 알게 됐지만 그때는 당황스러웠고 또 무서웠다. 그래서 "그냥 처음이라서요. 왜 해야 될지 몰라서..."라고 대답했다. 오해를 사기 싫어 한국인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일본인은 포켓에서 담배를 피워물면서 일장연설을 해 댔다. 묵념의 필요성과 중요성, 그리고 '대동아전쟁'에서 숨져간 숱한 사람들에 대해.
하지만 그가 아무리 그런 말을 해도 기자에게, 아니 한국인들에게 있어 8월 15일 정오는 '옥음방송'(천황의 항복선언이 나온 라디오방송)으로 기억되지 싶다. 일본인들은 묵념을 해야 할 시간이지만 한국인들은 만세를 외치는 시간이다.
그래서 기자는 06년부터는 정오가 임박해오면 경외로 이동했다. 그 분위기를, 물론 견뎌내라면 견뎌낼 수 있겠지만, 그 안에 홀로 눈을 멀뚱멀뚱 뜬 채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10년 8월 15일, 4년만에 경내에서 정오를 맞이했다.
놀라울 정도로 변함없는 분위기였고 기자는 그 때와 다름없이 눈을 멀뚱멀뚱 뜬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니까 야스쿠니 신사나 기자나 4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아마 내년부터는 "담배를 꺼 달라"는 안내방송이 나오면 다시 경외로 발걸음을 옮길 것 같다.
▲ 참배를 하기 위해 본전으로 들어가는 아베 전 수상 ©jpnews/야마모토히로키 | |
▲ 히라누마 다케오, 고가 마코토 등 국회의원들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jpnews/야아모토히로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