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x-japan ©jpnews/hiroki yamamoto | |
1998년 일본대중문화개방 이전에도 음악 좀 듣는다는 학생들의 가방 안에는 x-japan cd가 들어있었다. 일본 수상이 누군지 몰라도 x-japan의 endless rain에는 눈물 한방울 떨어뜨린 젊은이들도 많았다.
불법으로 유통된 cd를 숨겨서 듣고, 친구의 테이프를 복사해서 듣던 열광의 x-japan. 당시 x-japan은 일본 록밴드를 대표하는 그룹이었고, 살아있는 신화였다.
최전성기인 90년대 x-japan 멤버들도 혈기 넘치는 젊은이였지만, 어느새 세월이 흘러 그들도 중년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고비를 넘겼고, 파란만장한 사건사고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한번 세계를 향해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그 첫 무대를 20년 이상 그들만 바라본 해바라기, 일본팬들 앞에서 가졌다.
x-japan 이 일본팬 앞에 선 것은 2009년 5월 이후 1년 3개월 만이다. 이미 십 수년전 부터 세계진출을 노린 그들이지만, 월드투어 때가 되면 번번히 리더 요시키가 발병하거나 트러블이 생겨 무너지곤 했었다. 멤버 전원 40대를 넘긴 중년 락밴드, 이번에는 과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이 이 첫 공연에 주목했다.
▲ x-japan ©jpnews/hiroki yamamoto | |
'x-japan 월드투어 라이브 인 요코하마, 초강행돌파 칠전팔기-세계를 향하여- 콘서트'가 지난 8월 14일, 15일 양일간 요코하마 닛산스타지움에서 열렸다. 야외 콘서트는 x-japan이 역사 이래 최초였고, 뜨거운 여름밤 6만 5천명씩 양일간 13만 명을 동원하는 역대 최고의 기록을 세웠다.
단순히 숫자로 나열하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오지만, 13만 명이면 작은 도시 하나 인구쯤 되는 규모다. 이 엄청난 사람들이 x-japan을 보기 위해 움직인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13만 명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숫자도 팬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x-japan 의 콘서트 티켓은 좀처럼 구하기 힘들어 옥션을 통해 고가에 매매되는 일도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시 하나 인구를 들었다놨다 할 정도의 인기그룹 x-japan의 매력은 무엇인가. 그들의 역사를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다.
▲ x-japan 요시키와 토시 © jpnews/ 幸田匠 | |
x-japan은 그룹의 리더인 요시키(yoshiki)와 유치원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 토시(toshi) 두 사람의 결합으로 탄생하게 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미 해외 밴드의 음악에 대해 의견을 나눌 정도로 성장이 남달랐다. 그들은 중학교 때부터 밴드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고, 현재 x-japan의 보컬을 담당하는 토시는 당시 기타를 맡았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룹은 x-japan의 모태가 되는 밴드 x를 결성한다. x는 '무한가능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정식으로 정한 이름은 아니었다. 알파벳 한글자라서 눈에 띄고 외우기 싶다는 생각으로 공식명이 정해질 때까지 잠시만 x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으나, 그대로 밴드 이름으로 정착했다.
'아무리 좋은 곡을 만들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그들은 당시 락밴드로서 드물게 활발한 미디어 활용을 하며 지명도를 쌓았다. tv에서 활약하면 할수록 팬은 늘어났지만, 반대로 락 밴드 사이에서는 '락을 오락거리로 만들고 있다'며 비난을 받고 음악자체를 폄하받기도 했다.
그러나 미디어의 파워는 대단했고, x-japan은 인디에서 일약 메이저 데뷔를 달성한다. 메이저 데뷔 후에는 내놓는 음반마다 기록을 경신하며 80년대 후반부터 90년 대까지 일본 비주얼 락 열풍에 불을 붙이게 된다.
드럼 요시키, 보컬 토시, 기타 히데, 기타 파타, 베이스 타이지 등 다섯명의 멤버로 시작한 x는 세계진출 기회를 엿보다 미국에 이름이 같은 밴드가 있는 것을 알고 x-japan으로 개명한다.
x-japan은 일본 최초로 홍백가합전에 출장한 락밴드이며, 일본 최초로 도쿄돔 연속 3일 만석 공연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그룹명에 재팬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받고 사랑받는 그룹이었다.
▲ x-japan 초창기 멤버였던 베이스 타이지 © jpnews/ 幸田匠 | |
그러나 x-japan에도 전기가 찾아온다. 아시아 최고의 베이스 실력이라고 칭송받던 멤버 타이지가 돌연 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당시 탈퇴 이유로는 명목상 멤버간 의견차이라고 밝혔지만 후에 발간된 타이지 자서전에는 '탈퇴는 요시키에게 강요당한 것'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타이지 탈퇴는 팬들에게 큰 충격인 것은 물론, x-japan의 음악에도 변화를 맞는 계기가 된다.
오디션을 통해 새로 영입된 멤버 히스(베이스)의 등장으로 x-japan은 재정비한다. 그러나 최정상에서 멤버들의 솔로 활동이 잦아지고, 요시키의 발병 등 여러가지 이유로 이들은 간신히 x-japan 타이틀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또 한번의 결정적인 위기가 찾아온다. 자신의 자리에 의문을 품은 보컬 토시가 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보컬 토시의 탈퇴는 곧, x-japan의 해산을 의미했다. 토시가 탈퇴하던 1997년 마지막 밤에 x-japan은 해산공연을 갖고 아쉬운 1막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해산 후에도 불행은 끊이지 않았다. 1998년 갑작스런 히데의 사망소식은 일본은 물론, 아시아 전역에 충격에 몰아넣었다. x-japan의 정신적 지주로 알려진 히데의 사망에 멤버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x-japan은 전설 속으로 사라진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x-japan은 깜짝 컴백을 발표한다. 유치원 때부터 함께였던 요시키와 토시는 그룹 해체 이후, 한번도 만난 적이 없을 정도로 관계가 악화되었지만, 미국에서 우연히 만난후 극적인 화해를 이끌어낸 것이다. 그리고 사망한 멤버 히데를 가슴에 품고 다섯명이 다시 한번 세계를 향해 날개짓을 할 것을 다짐한다.
물론, 컴백 후에도 x-japan 내부에서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히스(베이스) 탈퇴설이나 스기조(기타) 영입, 요시키 추간판 헤르니아로 인한 수술 등 끊임없이 뉴스를 만들어낸 x-japan은 밴드 결성 28년째인 2010년 8월 14일, 염원의 월드 투어에 나아가는 한 발을 딛었다. 그것도 전설의 베이스 타이지와 x-japan의 영원한 멤버 히데와 함께 7명으로 말이다.
▲ 타이지와 함께 무대를 같이 선 x-japan © jpnews/ 幸田匠 | |
x-japan 공연이 열리는 요코하마 닛산 스타지움에는 낮부터 많은 팬들이 몰렸다. 등 뒤에 x자가 새겨진 티셔츠, 타올을 두른 모습은 한 눈에 그들이 x-japan 팬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중에는 사망한 히데를 떠오르게 만드는 빨간 머리나 과격한 의상의 팬들도 많았다. 콘서트장 일대가 마치 x-japan 축제가 열리는 분위기였다.
콘서트장을 찾은 관객의 연령층이 폭 넓은 것은 주목할 만 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온 네 살 정도의 아이부터 얼핏 보기에도 연세 지긋한 중년의 남성, 여성까지 최연소와 최고령 관객 사이에는 약 50년 가까운 나이차가 존재했다.
결성한지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는 x-japan의 팬이니 나이가 지긋한 것은 이해가 되지만, 이제 막 교복을 입어봤을 법한 10대 소년, 소녀들이 다수인 것은 의외였다.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데뷔했던 그룹의 콘서트를 찾는 10대들은 과연 누구일까?
x-japan 팬을 만나다아직 얼굴이 앳되어 보이는 남고생 두 명은
"x-japan을 듣고, 왜 나는 좀 더 빨리 태어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열여섯 살이라는 소년들은 '네, 다섯살만 더 많았어도 히데가 있던 다섯명의 x-japan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x-japan의 음악에 빠지게 된 것은 2~3년 전 학원 선생님에게 소개를 받아 우연히 노래를 듣고나서부터였다. 첫 곡을 듣는 순간, x-japan이라는 그룹에 관심이 생겼고, 마지막 곡을 듣는 순간부터 팬이 되었다. 그 때부터 x-japan의 음반을 모으고, 책을 사서 읽으며 심취했다.
부모님 세대에는 x-japan 이야기가 통하지만, 또래들은 x-japan이 누군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자신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에 활약했던 그룹이니 어쩔 수 없지만, 소년들은 "한번만 노래를 들어보면 달라질 것"이라며 주변 친구들에게도 x-japan을 알리는 데 열심이다.
또래들이 아이돌 akb48의 노래를 들으며 멤버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고 있을 때, 이 소년들은 x-japan 을 들었다.
"요즘 아이돌, 가수에는 도통 흥미가 생기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소년들. x-japan 의 매력은 애절한 멜로디, 그리고 세계 제일의 실력이라며 두 소년은 고개를 끄덕인다.
부모님과 같이 온 세 살, 네 살 꼬마를 보면 너무 부러워진다는 그들.
"부모님이 x-japan 의 팬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몇 번 했어요. 그러면 훨씬 말도 잘 통하고 이런데 같이 올 수 있을텐데" 그만큼 좋아하는 x-japan의 라이브를 직접 처음본다는 소년들은 두근두근한 설레임을 드러냈다.
금발 머리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30대 여성팬 4명 그룹도 눈에 띄었다. 그녀들은 공연이 시작하기 3~4시간 전부터 입구 앞에 자리를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들은 x-japan의 전성기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해 온 20년 지기 팬이었다.
10대 시절, x-japan 콘서트장에서 알게된 이들은 평생 친구로 남았다. x-japan이 해산하고 부활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들은 서로 의지가 되며 언젠가 돌아오리라 믿고 있었다고 했다.
그녀들에게 x-japan의 존재란 무엇인지 묻자,한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인생 바로 그것입니다. 제 인생에서 x-japan이 한시도 떨어진 적이 없으니까요" 나머지 친구들은 "말 잘한다"며 박수를 쳤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x-japan이지만, 그녀들은 그저 계속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평생 응원할 거니까 일본에서 더 많이 활동을 보여주세요" 라는 메세지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얌전한 옷차림에 고운 얼굴이 인상적인 50대 중년부인을 만날 수 있었다. 어디로 보나 x-japan의 콘서트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작은 핸드백 안에는 파일에 담겨진 요시키 사진이 있었다.
"티켓 구하는데 애 먹었어요. 아들이 티켓을 구해줘서 이번에 처음으로 라이브를 보게 되었어요. 오늘은 친구랑 같이 왔고, 내일은 아들이랑 같이 올 거예요. 두근두근하네요" 마치 첫사랑의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듯 흥분된 모습이었다.
"젊었을 때도 x-japan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컴백 후에 더욱 좋아하게 되었죠. 집에서는 아들, 딸과 자주 dvd를 봐요. x-japan은 뭐랄까.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매력이 넘치는 것 같아요. 지금이 가장 멋있죠. 한번 보세요. 남자 팬들도 많죠? 동성을 매료하는 그룹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x-japan의 매력에 대한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모른다.
자신의 인생에서 x-japan은 무엇인지 묻자 그녀들은 대답한다.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 인생에서 x-japan이 사라지는 것은 싫어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녀들은 입장이 시작된 콘서트장 안으로 재빨리 발길을 돌렸다.
▲ 콘서트장을 가득 메운 x-japan 팬 © jpnews/ 幸田匠 | |
오후 3시 30분부터 콘서트장 입장이 시작되었지만, 오후 6시가 다 되어서야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6만 5천 명이라는 거대 인원이 움직이기 때문에 셀 수 없이 많은 경비원들이 안내를 하고 있었고, 콘서트장부터 역까지는 안전사고를 대비한 경찰이 상주하고 있었다.
10억 엔을 들였다는 무대는 거대했다. 무대 위에 높이 솟아오른 x라는 글자는 위엄마져 풍겼다. 콘서트장 양쪽에 거대한 스크린 두 개와 상단에 각 멤버를 비추는 4~5개의 스크린이 설치되었다. 습도 높은 찌는 날씨에 콘서트 시작 직전에는 보슬비까지 내려 야외 콘서트만의 낭만이 느껴졌다.
x-japan은 신곡 jade로 무대를 시작했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무대에는 화염이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요시키는 등장하자마자 살짝 걸치고 있던 셔츠를 벗어버렸다. 목에는 하얀 지지대를 한 상태였다. 요시키는 만성적으로 추간판 헤르니아(디스크)를 앓고 있어 지난해 수술을 받고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최근 이혼과 개인파산 문제로 넉다운이 되었을 것 같았던 토시는 아주 건강한 모습이었다. "보고싶었어"를 외치며 "일본에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역시 일본 좋군요"라고 말하자 팬들은
"토시, 오카에리(어서 오세요)"라며 그를 따뜻하게 반겼다.
히스와 타카, 스기조는 말은 없었지만 무대 끝으로 달려나와 열광적인 연주를 보여주었고, 토시의 장난에는 피식 웃는 모습도 보였다.
선곡은 jade를 시작으로 rusty nail, 파타와 스기조의 솔로 연주, 스기조의 바이올린에 맞춰 어쿠스틱 버전으로 say anything, 요시키의 tears 피아노 솔로, kurenai, 신곡 born to be free, 엔딩곡으로 요시키 피아노와 토시의 보컬만으로 forever love, i.v., x 였고, 앵콜곡으로 endless rain, tears 순서로 총 11곡이었다.
곡 수가 적어서 2시간 혹은 2시간 30분 간의 공연을 어떻게 채울까 궁금했는데, 팬들과의 교류, 퍼포먼스를 통해 나름 지루하지 않게 짜여졌다. 공연과 엔딩 사이, 엔딩과 앵콜 사이 10분 이상의 긴 휴식에도 팬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x-japan을 응원했다. 6만 5천 명의 팬들이 스스로 파도타기를 하기도 했고, x를 소리쳐 부르기도 했다.
엔딩 세번째 곡이었던 x에는 탈퇴 18년만에 x-japan과 함께 연주하는 베이스 타이지가 등장했다. 토시의 소개로 손을 번쩍 들고 나타난 타이지는 히스와 함께 더블 베이스를 연주하고, 토시와 호흡을 맞추는 등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6만 5천 관객이 x자를 그리며 뛰어올랐고, 열광의 무대를 마친 타이지는 요시키를 머리에 키스를 하며 훈훈한 장면을 그리기도 했다.
▲ 스기조의 바이올린, 어쿠스틱 버전 say anything을 부르는 x-japan ©jpnews/hiroki yamamoto | |
요시키는 온 몸이 땀 범벅으로 생수 몇 통을 머리에 끼얹었다. "여기 덥지 않아요? 이렇게 더울 줄은 상상도 못했어" 숨을 가쁘게 쉬는 요시키를 바라보며 토시는 "습기에 약한 요시키입니다"라고 농담을 던졌다. 토시는 가죽으로 된 긴 점퍼로 꽁꽁 싸매 훨씬 더 더울 것 같다며 요시키는 씨익 웃는다.
kurenai 곡 부분에는 노란색 하트 기타가 등장하며 미소짓는 히데의 모습이 화면에 비쳐졌다. 일순 6만 5천명의 관객석에서는 함성이 터졌고, 언제나 히데와 함께하는 x-japan의 모습이 아름답게 비쳐졌다.
엔딩곡 x 때는 탈퇴 멤버 타이지와 히데 영상으로 7명의 x-japan 첫날 공연이 막을 내렸다. 완벽한 하모니와 완전히 흥분한 관객들. 열광의 콘서트는 그렇게 서서히 저물어갔다.
▲ 드럼솔로를 선보인 x-japan ©jpnews/hiroki yamamoto | |
■ 목보호대 감고 투혼발휘한 요시키, 기자회견에서...
목에 보호대를 감은 요시키는 몇 번이나 쓰러질 듯 쓰러질 듯 갸냘픈 모습이었지만, 팬들에게 "아이러브유"라고 말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고 관객석 50미터가 넘는 거리를 질주하며 팬들과 손을 잡는 등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공연 이틀째인 15일에는 생사를 넘나드는 12분간의 드럼 솔로연주로 요시키의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양일간 공연을 마친 요시키는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멤버가 함께 참여한 이번 공연은 매우 기뻤다. 시작하기 전에는 불안도 있었지만, 모두의 덕분으로 잘 끝낼 수 있었다"며 만족의 표정을 지었다.
18년만에 함께 연주한 타이지에 대해서는
"세월의 흐름을 느낀 부분도 있고, 느끼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다"며 말을 아끼는 모습. 곧 시작될 전미투어에 기대와 함께
"무엇인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행복하다"고 말했다.
x-japan 염원의 월드 투어는 이번이야말로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을까.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 x-japan ©jpnews/hiroki yamamoto | |
▲ x-japan ©jpnews/hiroki yamamoto | |
▲ 요시키에게 키스를 보내는 타이지 © jpnews/ 幸田匠 | |
▲ 요시키가 쉬고 있는 틈을 타서 드럼을 연주하고 있는 토시 © jpnews/ 幸田匠 | |
▲ x-japan ©jpnews/hiroki yamamoto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