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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경찰관이 10억엔 빚지고 역술인된 사연
일본인을 통해 본 일본사회(4) - "점(占)은 도박 아니다" 오시미즈 씨
 
김현근 기자
 
▲ 스나크 비스타   ©jpnews/이승열

 
일본에는 '스나크'라는 독특한 술집이 있다. 카운터 끝에는 노래방 기기가 놓여있어 일상에 지친 샐러리맨이나 자영업을 끝낸 사람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노래를 부르거나, 하루의 피로를 풀수 있는 곳이다. 

늦은 시각, 도쿄 고엔지의 조그만 스나크 비스타(美星). 아리따운 아가씨 둘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단골 손님인가, 아니면 일하는 아가씨(?)일까라고 생각했으나 이내 이곳 점주 앞에 앉아 이름, 생년월일을 적어낸다. 그녀들은 소문을 듣고 이곳까지 점(占)을 보러온 사람들이다. 
 
이곳 경영자인 오시미즈 코잔 씨(大清水高山,54)는 스나크에서 손님들에게 솜씨 좋은 안주를 내주는 요리인이기도 하지만, 왠만한 샐러리맨 저리가라 할 정도의 고수입을 얻는 인기 역술인.
산케이스포츠에 십여년 이상 띠 운세에 관한 글을 연재하고 있는 그는 하루에 많을 때는 4-50명의 사람의 운세를 봐주고 있다.
 
한때 경찰관으로 복무하면서 검거실적 1위에 오르기도 한 그는 젊은 시절 10억엔의 빚을 지고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적도 있다. 그런 그가 스나크를 운영하면서 점을 봐주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가게 '비스타'를 찾아 그의 인생과 연간 1조엔 시장규모라 일컬어지는 '우라나이(占い, 점)'에 대해서 물어봤다. 
 

▲ 오시미즈 고잔(大清水高山) 씨     ©jpnews/이승열

 
■ 세상에는 반드시 정의가 필요하다.
 
평일 오후 4시. 아직 손님이 없는 가게에서 그는 말을 꺼냈다.   

"원래는 경찰 일을 계속 하고 싶었죠."

홋카이도 출생인 그는 둘째 형이 경찰이었다. 형이 '어차피 경찰이 되려면 일본의 수도인 도쿄의 경찰이 되라'고 조언, 도쿄로 왔다. 경찰이 되고 싶었던 계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제가 소중히 키우던 개를 나쁜 선배가 발로 차 죽였어요. 그때는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했는데 하지만 하나 결심한 게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반드시 정의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요."

고등학교를 졸업한뒤 공무원시험을 거쳐 바로 경찰학교에 들어갔다. 경찰학교 1년 과정을 마치자 도쿄 나카노 경찰서에 순사(巡査)로 배치됐다. 일본에서 경찰이 되면 가장 먼저 일을 시작하는 곳은 파출소. 시부야역 앞 파출소의 경우는 하루종일 길을 묻는 사람으로 넘친다. 
 
"경찰학교에서 '지리지도'라는 항목으로,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해주는 교육을 받습니다. 그것도 경찰의 업무입니다."
 

경찰의 첫번째 업무는 바로 길 안내라는 것. 시민들은 또한 '자전거를 잃어버렸다', '스토커를 당했다'는 등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파출소를 찾는다. 그는 경찰이 되고 나서 제 1선에서 시민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게 즐거웠다. 
 
오시미즈씨는 범인검거에도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 하루 철야하는 동안 4-5건의 실적을 올릴 정도였으니까. 그는 경찰을 거리의 재판관이라 부른다. 
 
"혼자서 한달에 수십명의 도둑을 잡았어요.  월간 검거실적이 가장 높았거든요. 어떻게 잡느냐면 내 나름의 심리학적인 감이 있었습니다. 현장에 가서 나라면 범인이 이곳을 지나갈 것 같다는 생각으로 남들이 안가는 곳에 가봅니다. 그러면 범인이 꼭 그곳에 숨어있더군요. 또 인상을 보면 대충 알아요. 아, 이 사람은 곧 일을 저지르겠구나. 제 나름의 프로파일링이 머릿속에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교통위반단속으로 꼽았다. 
 
"언젠가 교통위반 단속할 때였어요. 차를 세우고 딱지를 끊으려고 했는데, 운전자가 연신 깍듯하게 죄송하다고 하고  아이도 타고 있어 그냥 보내준 적이 있었죠.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언질을 주면서요. 그런데 차가 떠날때 그 사람이 '순사도 설렁설렁하구나'라고 혼잣말로 한 것이 들려왔어요. 아차! 싶었는데, 차는  이미 떠났죠. 그리고 1주후 그 사람, 과속으로 차가 뒤집어져 사망했더군요. 그때 생각했죠. 아! 내가 처음에 제대로 단속을 했더라면..."
 
순사생활이 끝나면, 본인희망과 적합여부에 따라 형사과, 소년지도과, 교통과 등 여러가지 과로 나눠진다. 원래 영어실력이 있던 그는 '도쿄도 영어 강습 폴리스 클래스'로 배속됐다. 이곳은 6개월간 영어를 할 수 있는 경찰을 양성하는 코스. 20명 정원에 4만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클래스 졸업과 함께 1979년 제1회 도쿄 서밋에 통역대기요원으로 배치받았고 그후 유도 등 격투기의 스페셜리스트를 양성하는 무도소대로 다시 전근됐다. 그렇게 현장과 동떨어진 곳에서 일하던 어느 날  첫 승진시험을 앞두고 경찰을 그만둔다. 경찰이 된지 6년만이었다.
 
"저는 자타 공인의 '미스터 경찰'이었고, 저 만큼 경찰에 어울리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경찰 일을 하면 할수록 튀는 존재가 되더군요. 주위의 경찰관들은 평범한 공무원이라고 생각했는지 적극적으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나는 휴식시간도 순찰을 하거나, 열심히 도둑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조직으로부터 '이 시간에 도둑 잡아서 어쩔 생각이냐'라며 비난을 받았습니다. 시민을 위해서는 열심히 활약했지만, 조직 내에서는 안맞는 존재였던 거죠."
 
경찰을 그만두자 얼마 안되는 돈을 가지고 la에 갔다. 25살.  
 
"경찰 마인드를 모두 빼고 싶었어요. 경찰학교에서 1년간 배우는 과정은 어떤 의미, 밀실에서 세뇌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사건의 첫번째 발견자나 신고자를 첫번째 용의자로 보라는 둥. 전 경찰을 그만둔 이상 사회속으로 스며들어가야한다고 생각했거든요."
 

la에서 얼마 안 있어 수중에 돈이 다 떨어졌다. 그럼에도 그는 무일푼으로 1년간 아무일도 하지 않고 그곳에서 살았다.
 
"제 머물던 호텔 주인집 개 때문입니다. 원래 호텔 오너가 일본인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우연찮게 그 집 개가 초등학교 때 죽었던 저의 애견과 매우 닮았더군요. 원래 사람을 잘 따르지 않는 개였는데 나한테는 이상하게 잘 따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곳을 떠나려고 하자 그 개가 갑자기 드러눕더니 빈사상태에 빠진 겁니다."
 
호텔 오너는 자신의 애견을 위해 오시미즈씨를 la에 머물게 했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개와 놀아주는 것만으로 1년을 지낼 수 있었다. 

1년후 일본으로 귀국. 휴양지로 유명한 치치부 산속 여관에서 4년간 일을 했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인생의 공부가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물건 들여오기, 원가 계산, 요리보조, 이불깔기,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주는 등 여관일의 모든 것을 익혔다. 이때 만난 여행사 간부들과 알게 되면서 여행사로 이직을 한다.
 
"여행사에서는 3년간 일했어요. 그때가 아마 일본에서 버블이 시작되던 88년이었을 거에요. 실적에 따른 성과제였는데 3개월만에 임원 월급을 뛰어넘었고 급기야 6개월만에 사장월급도 뛰어넘을 만큼 실적을 올렸어요. 다, 제 선배, 동료였던 경시청 사람들을 모조리 손님으로 끌어올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죠."

3년 후 아예 새로 여행사를 차렸다. 회사 사장이 된 것이다. 한때는 24-25명까지 직원을 두고 일했다. 그러나 이것이 지옥의 문을 열어제친 격이 됐다.
 
"대부분 경찰출신을 직원으로 썼습니다. 잘 될리가 없었죠. 경찰이라는 게 시민들에게 머리 숙이는 일을 잘 못하잖아요. 서비스업이었는데. 24명의 급여를 저 혼자 영업으로 끌어왔어요. 어느 시점에서 아! 더 부채가 늘어나기 전에 그만둬야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접었어요." 
 
2년만이었다. 10억 6천 500만엔의 부채가 남았다. 한화로 치면 130억원이 넘는 거액이다. 개인명의로 빌렸으므로 파산신청을 하지 않고 끌어 안았다.

그후 그가 안 해본 직업이 없었다. 그는 50여개의 일을 해봤다고 한다. 운전수, 경비회사 보디가드, 유명 가수의 제자. 관혼상제업. 캬바쿠라 점장, 항공사진을 찍는 일. 글자 디자인, 장의업, 빌딩 유지보수 청소, 고기집, 타코야키집...등. 그렇게까지 바닥으로 떨어지고 나니 무서운 게 없었다. 

보통사람 같으면 자기가 원래 하던 일을 하거나 자살 혹은 도망을 선택한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꾸준히 돈을 갚아나갔다. 하루에 2시간 밖에 잘 수 없었다.
 
우선 당시 유행하던 포장마차마을. 가와구치에서 한 빌딩 옥상에 440석을 만들어 놓고 크게 장사를 했다. 하루 매출이 2-300만엔 정도. 너무 인기가 있자 주변 이자카야(술집)가 망하거나 장사가 안되면서 불만이 시청으로 들어갔다. 시청에서는 피난경로가 없다, 외국인을 썼다는 등으로 트집을 잡았다. 1년반 후 그만뒀지만 2억엔을 갚았다.

그 후 후쿠시마의 유명리조트 옆 중견 호텔에서 1년 반 동안 일했다.
 
"그 호텔이 다른 곳과 매매 계약을 맺었는데, 계약 체결부터 인도까지 1년 반 동안 시간이 비어 있었어요. 호텔도 살아있는 것이라서 사람이 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곳 오너가 이렇게 제안하더군요. '급료는 없다. 단, 1년 반 동안 번 매출 전부 가져가도 되니까 이곳을 맡아달라'. 원래는 안하려고 했는데, 골든위크에 잠깐 해보니 하루 현금 매출이 500만엔이더군요. 그래서 맡았습니다."

그렇게 1년 반만에 다시 3억엔을 갚았다. 이 시점에서 그는 다른 일로 번 돈을 포함해 총 6억엔 정도를 갚았다. 그리고 그가 한 일은 관동지역 축제 때 전국을 도는 닭꼬치 포장마차 관리인이었다. 일본에서는 어느 동네를 가더라도 한 해에 한 번쯤은 축제를 연다. 축제가 열리면 각종 포장마차가 늘어서 흥을 돋군다. 금붕어 뜨기, 빙수가게, 야키소바 등. 그는 여러 지역을 돌면서 야키토리(닭꼬치) 포장마차 영업을 주관하는 일을 했다.
 
"옛날에는 그런 일을 폭력조직이 관여했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물론 제가 어느 동네를 갔더니 그곳을 장악하고 있던 야쿠자가 너는 어느 조직소속이냐고 물은 적은 있었어요. 그래서 경시청 ob(전 경찰)라고 당당하게 말하기도 했죠. 별일은 없었지만 말이 안통해서 지역 상공회로 연락해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그걸로 3년간 2억엔 정도 갚았죠."
 
그렇게 20년간 꾸준히 돈을  벌어 10억엔이라는 거액의 빚을 다 갚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갚은 빚은 리무진 값.
 
"제가 여행사할 때 리무진 3대를 끌고 그랬거든요. 27만엔 플러스 소비세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사실 빚 중에서 은행이나 사채는 없었습니다. 전부 개인에게 얻거나 여행사 운영하면서 못 갚은 쿠폰값 등이었으니까요."
 

그는 돈을 다 갚은 후, 끝까지 자신을 믿어준 300명을 불러서 파티를 열었다. 그리고 '여러분 덕택에 전부 빚을 갚았다'고 말했다.
 
다 갚고 나서 든 생각이 뭐냐고 묻자 "용케 죽지 않았구나"라고 답했다. 그는 그 많은 돈을 갚을 수 있는 원동력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선, 도망치고 싶지 않았어요. 나 같은 인간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런데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그건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억지로라도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보통은 자기가 전부 끌어안고 자살하거나, 도망가거나 하잖아요. 그런 편이 더 편하니까. 제가 바보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부러 그 길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죽는다고 빚이 갚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일단 도망가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빚을 갚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되는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생각했다. 결혼을 했기 때문에 아이들 학비는 빚과 별도로 따로 벌었다.
 

▲ 오시미즈, 우라나이시,占い師     ©jpnews/이승열

 
■ 인간 교차로를 열다
 
그리고 고엔지. 지금의 스나크 '비스타'는 99년부터 열었다.
 
"스나크는 여러가지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이 모이는 곳입니다. 제가 여러가지 경험을 했기 때문인지 여러사람들의 고민에 대해 어드바이스를 해줬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제가 어느 한 곳에서 자리잡기를 원했어요."
 
그렇게 주위의 지인들 도움으로 초기자금을 일체 들이지 않고 시작했다. 가게를 연 뒤  
이곳에 오면 삶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졌다.
 
그가 점을 볼 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바로 애견이 죽은 다음부터다. 물론 역술,점성술,타로카드,손금 등은 전혀 공부를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때 몇월 몇일 물건이 낙하해서 학생이 죽을 것이라고 예견했어요. 그때 학교 교사가 '너 바보 아니냐'하면서 저를 특수학교로 보내려고 했었요. 당시 저는 홋카이도에 살았는데 제가 예견한 날 눈이 쏟아져서 학교 지붕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2명 죽었어요. 제가 말했던 바로 그 날, 그 시간에요."

 
그후 그는 교사들의 점을 주로 봐주게 됐다. 초등학교 고학년때는 여교사의 연애상담, 중학교때는 이혼상담,  고등학교때는 불륜상담의 도움을 줬다고 한다.
 
오시미즈씨는 점을 볼 때 이름과 나이,손금 등 통계학적으로 정리된 것을 참고하지 않는다. 그는 의뢰인이 가게에 들어오는 첫 순간에 느껴지는 표정, 들어오는 방식을 보고 그 사람을 파악한다고 한다. 
 
"저는 얼굴 인상, 들어올때 분위기, 또 첫마디에서 느껴지는 목소리 톤을 보고 판단합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으로부터 밀려오는 '파동(波動)'을 느낄 수 있어요. 일례로 동물과 동물이 서로 이야기하나요? 사자와 멧돼지는 딱 서로 만난 순간에 상대방의 겉모습을 보고 냄새를 맡으면 압니다. dna를 읽는 거죠. 그래서 서로 죽이거나 교미를 하거나 합니다. 이것은 바로 상대로부터 밀려오는 파동때문이죠.
파동을 읽고 나면 '아, 이 사람은 회사사람들이 싫어하는구나! 오타쿠구나'를 그 사람이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됩니다. 물론, 생년월일이나 손금 등은 참고로 듣긴 하지요. 이름, 생년월일은 묻지 않으면 오히려 의심하니까요."
 
복채도 일부러 받기 시작했다. 돈을 받지 않으면 '어차피 공짜니까 대충 둘러대는게 아니냐'는 불신감을 갖기 때문이라고. 손님의 95%가 여성. 대부분 연애, 결혼에 대한 상담이다. 남자의 경우는 일, 가정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는다.
 
흔히 점을 보러 가면 쪽집게처럼 그 사람의 과거를 맞추면서 의뢰인의 신뢰를 얻어낸다. 그리고 앞날을 예견한다. 그는 그러나 '이렇게 한 사람의 과거를 맞추거나 미래를 대해 섣불리 예견하는 것은 그저 도박'이라고 말한다.

"과거나 미래를 쪽집게처럼 알아 맞추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교통사고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점술가는 영어로 '포춘텔러'라고 합니다. 행운, 행복에 대해서 말해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사람이 보다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죠. 사실, 그 사람이 여러곳을 헤매다 지쳐서 이곳에 왔는데 그런 사람에게 2년후 죽는다거나, 일가가 망한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게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그는 이혼 고민으로 오는 여성에게도 '남편에 대해서 뭐라고 불만을 털어놓기 전에 당신 자신은 어떤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라고 조언한다. 물론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도록 어드바이스한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에게 관상이 점을 보는 데 얼마나 영향을 미치느냐고 물었다.
 
"얼굴에도 그 사람의 인생이 있지만, 역시 눈은 감출 수가 없어요. 얼굴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면 아, 이 사람은 경계심이 강하구나! 그렇게 느끼죠. 또, 손에 고급 로렉스시계를 차고 있고 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있어도 눈의 안쪽이 빨간 혈관이 떨리는 것을 보면, 아, 이 사람은 항상 돈에 고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 흔한 홈페이지 하나 없지만 입소문만으로 끊임없이 손님이 찾아온다. 저녁 8시반부터 아침 5시까지. 많을 때는 하루 40명까지 본다고 한다. 그는 석간후지에는 3년간 인간감식학이라는 칼럼을 연재했고, 산케이 스포츠에 15년전부터 연재중인 글은 호평속에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비스타에 와서 점을 보고 난뒤 운세가 잘 들어맞았다!'라며 입소문이 난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건, 제 어드바이스를 듣고 그대로 실천하면 자기 운세가 열리면서 본인이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남자친구와 사이가 좋아졌다거나, 결혼할 수 있게 됐다거나. 이같은 결과는 플러스 방향으로 잘 풀렸다는 뜻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 지금부터 미래를 향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겁니다. 과거의 일을 가지고 계속 이랬네, 저랬네라고 맞춰봤자 아무런 의미와 메리트가 없어요."
  
그는 채무자였을 때도 채권자가 인생상담을 하러 오기도 했다고 한다. 가게 영업은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쉬는 날 없이 강철체력을 자랑한다. 종종 점을 보러 출장 요청도 받는다. 얼마전에는 규슈에 다녀왔다.
 
그에게 사람 이름과 운세와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이름은 중요합니다. 명명(命名) 즉, 생명을 짓는 것이죠. 이름을 대충 지으면 인생도 그렇게 되요. 특히 행복하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붙이는 이름은 불행해지기 쉽습니다. 일본 이름 중에 아이(愛)란 이름이 많죠. 이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라는 거에요. 메구미(恵み)는 사랑하는 상대에게 은혜를 준다는 거고. 사치코(幸子)도 그렇구요. 어디까지나 일반론이긴 하지만. 유키오(幸男)라고 행복이 들어간 이름의 남자는 여자때문에 고생하거나 여자버릇이 안좋거나,아니면 제대로 된 여자를 못 만나는 케이스가 많아요."
 
그에게 점을 본다는 것은 단순히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인생상담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도 수십명의 사람의 인생고민을 봐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 힘든 점은 없느냐고 물었다.
 
"우라나이(점보는 것)란 이기고 지는 것이 확실한 '승부'입니다. 즉, 상대의 마이너스 아우라가 이쪽으로 밀려오는데 거기에 빨려들어가면 아웃이죠. 정말로 풀 파워로 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초창기 상대에게 기를 빼앗긴 적도 있지만, 자신이 기력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도 상대가 믿어주지 않습니다. 즉, 상대가 이곳에 점을 보러 와서 좋았다고 느끼게 할만한 자신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제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거리감을 두지요. 일단 점을 보고 나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니까 단 것을 먹습니다. 초콜렛이라든가 사탕 등."
 
빚을 다 갚은 그는 현재 운영하고 있는 스나크만으로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한 편이다. 그러나 실 수입은 점 보는 것이 스나크보다 훨씬 많은  편. 앞으로 가게를 별도로 분리할 생각이다.

 
▲ 오시미즈, 우라나이시,占い師     ©jpnews/이승열


그는 수없이 많은 직업을 거친 까닭에 지금 당장이라도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요리사이기도 하다.

"지금 당장 누가 저보고 히로시마야키를 만들어내라고 한다면 바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누가 저보고 내일부터 당장 이자카야 전문점을 하라고 하면 할 수 있고요."
 
그는 야키토리 전문점,호텔,여관, 레스토랑,경비회사,가이드 등 왠만한 일은 바로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일본의 유명 작가 아사다 지로는 젊은 시절 갖은 직업을 거쳐 소설가로 데뷔했다. 자기 인생에 대해 글을 쓸 계획은 없는 것일까.
  
"저는 좀 더 인생을 살아보고 보다 자리가 잡히면 쓸지도 모르겠네요. 혹시 쓴다면 상당히 임팩트 있는 책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부산에 2번 여행을 다녀왔다는 그는 한국의 '윗사람을 소중히 하는 유교문화를 일본인이 보고 배워야한다'며, 한국의 좋은 문화를 그대로 인정하고 언어의 벽을 넘기 위해 자신도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
 
"일본은 요즘 나이 든 사람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최근 20년간 물건, 브랜드, 돈, 성장만을 꿈꿔왔기 때문이죠. 자본주의란 경제가 계속 성장해야한다고 하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일본인은 이런 가운데 병을 앓고 있습니다. 우울증 직전이죠. 최근에 저를 자주 찾아오시는 분들이 정신과 의사분들이에요. 상담을 많이 하다 보니 정작 자기자신도 넘쳐나는 고민의 해결책을 못찾게 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아는 사람들은 고민이 생겼을 때 '비스타를 가 봐라. 해결의 실마리가 있을 것이다'라고 한다. 그는 자신은 단순히 
점을 보는 것 뿐 아니라 인적 네트워크를 제공해준다고 말한다. 
만약 사건변호가 필요하다면 이 변호사에게, 이런 물건은 이 부동산에서, 행정서사, 일꾼, 운전수 등 꼭 필요한 사람을 소개한다. 그를 거쳐간 인맥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는 그래서 자살을, 죽음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을 구한 적도 많다고 한다.

 
"세상에 혼자서 여러가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제 컨셉은 나를 알게 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죽기전에 한 번이라도 와서 내 얼굴을 보고 죽어도 되지 않느냐라고 이야기하죠."
 
그는 정작 본인의 고민은 어떻게 해결할까.

 
"그런 것은 속으로 삼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고민이 생기면 일체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을 많이 해서 답이 나온다면 생각하겠지만, 너무 생각을 많이 해서 나온 답이 제대로 된 것일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생각하지 않는 게 좋죠." 

그에게 마지막으로 '점'의 정의에 대해서 물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헤매는 동물입니다. 태어남과 동시에 반드시 죽음을 향해가죠. 즉 인간이라는 것은 죽는다는 전제하에 살아있는 생물입니다. 점이란  과거는 놔두고 지금부터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 어떤 마음을 가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마음 속에 선과 악을 가지고 있고 때와 장소에 따라 악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다만 점은 그 플러스되는 마음을 끄집어내서 그걸 늘림으로써 그 사람의 미래가 열리게 만드는 것이죠." 
 
그는 "자기 자신이 점을 통해 휴먼 스크램블, 인간교차로가 되기 위해서 비스타를 만들었다"고 한다. 손님들은 
비스타를 점을 보는 곳이 아니라 살아가다 지쳤을 때 용기를 얻는 오아시스라고 생각한다. 도쿄의 고엔지에 가면 그런 오아시스를 만날 수 있다.

 
 

▲ 남자는 3000엔, 여자는 2000엔  ©jpnews/이승열
▲ 오시미즈, 우라나이시,占い師     ©jpnews/이승열
▲ 오시미즈, 우라나이시,占い師     ©jpnews/이승열
▲ 오시미즈, 우라나이시,占い師     ©jpnews/이승열
▲오시미즈, 우라나이시,占い師     ©jpnews/이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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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0/06 [17:23]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글을 웬만하면 게시하지 않는데.. barth 10/10/06 [19:25]
오랜만에 읽는 매우 좋은 기사네요. 점은 플러스되는 마음을 끄집어 내어 그것을 늘린다(중요한 것은 사람 본인의 마음가짐과 행동이겠지만). 극단적 상황을 극복하고 다대한 삶의 체험을 살아온 사람의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수정 삭제
좋은 기사였습니다. davidwu 10/10/06 [20:39]
나중에 한번 가봐야 겠군여. 하지만, 가격이 하루 여행 경비라...... 수정 삭제
정말 좋은 기사네요. 조중동보다 훨씬 낫습니다. 유희 10/10/06 [23:30]
다양한 삶을 살아 오시고 지금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들어주는 직업을 하고 계시는 고잔 씨가 정말 아름다워 보입니다. 앞으로도 만수무강하셔서 수많은 일본인들의 마음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수정 삭제
관상이 대단하시네요. 부산갈매기 10/10/07 [11:55]
무엇을 해도 일가를 이루실 분이었네요.

본인의 운명에 맞는 고난을 다 겪고, 다른 사람들의 미래를 열어주는 좋은 일을 하시니, 앞으로도 더욱 이름이 나고 행복해지실 것입니다. 수정 삭제
잘 봤어요.. 10/10/07 [17:01]
잘 봤습니다.
도쿄가면 가봐야겠군요... 수정 삭제
재밌는 기사네요 굿 10/10/08 [10:26]
이런기사 좋군요. 취재하시느라 수고하셨어요. 수정 삭제
넘살이 좋은분이시네요 BIeu 10/10/09 [13:51]
오오.... 저런인상 흔한인상이 아닌데

그리고 역경을 이겨낸분 참 대단하네요 수정 삭제
분이시군요.. 대단한 11/05/01 [14:17]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참 좋은 정보이자 감동을 주는 글이었어요..
수정 삭제
어떻게 저런 에너지가 가능하신지... hj 11/08/25 [22:00]
그 비결도 궁금하네요...단순히 일만 열심히하는게 아니라 인덕을 쌓으신분같아요...보통 사람같음 자살하거나 빚 안갚고 잠적하거나하실텐데 굳세게 1원까지 다갚고 마지막날엔 300명을 불러 파티했다니 감탄합니다.. 전,사실 조금만 힘들어도 살기싫단생각하는데 이래선 안되겠어요...일어만 된다면 도쿄갔을때 꼭 들러보고싶네요...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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