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모토 시내에서 아소산으로 가는 길. 이날 아소산을 보고 온천으로 유명한 벳부로 건너가야겠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이틀 전 눈이 내렸지만, 이제 녹아서 체인은 필요없다는 라디오방송을 들었으므로 정상 근처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차를 몰았다. 아소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평원에 계속 이어져 있었다. 아소 분지 안에 거주하는 인구가 무려 10만명.
아소산은 규슈의 상징이기도 하며 약 3천만 년 전부터 화산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금의 아소산은 10만 년 전의 대폭발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총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으며 1,216미터 높이인 나카다케(中岳)에서는 지금도 분화구에서 연기가 뿜어나오고 있다. 보통 관광으로 들르는 곳은 바로 이 나카다케다.
한 일본인 트위터 친구는 자기가 아소산에 갔을 때는 분화구 상황이 안 좋아서 못 올라가봤다고 한다.
차로 나카타케 근처까지 올라간 뒤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를 타고 나카다케로 올라가는 길.
나카다케 정상에 도착했다. 연기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곳. 카메라를 들고 있기 어려울 정도로 손이 시렸다.
- 나카다케 분화구/ 연기인지 안개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유독가스나 바닥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나카다케 제1화구는 항상 tv 모니터로 감시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산화유황 농도도 리얼타임으로 측정되기 때문에 위험농도에 이르면 관광목적의 화구 주위 입장이 제한되기도 한다.
나카다케의 분화활동은 상당히 패턴화되어서 다음 사이클을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분화-> 분화 진정 -> 칼데라호 형성 -> 칼데라호 소실 -> 분화공의 형성 -> 분화공의 적열현상 -> 분화
이로 인해 분화 예측을 상당히 간단하게 할 수 있어, 관광객을 안전하게 유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에는 안전하지 못한 시기에 관광객이 왔다가 분화에 의해 희생되기도 했다. 1958년에 12명이 사망했으며, 1979년에는 사망자 3명, 부상자를 11명이나 내기도 했다. 이때 찍은 동영상. 직접 확인해 보시길!
정상은 한 바퀴 도는 20분이면 충분했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 길.
4-50대로보이는 어떤 관광객이 70대인 사코다 씨 어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일본에서는 좀처럼 나이든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데 신기하기도 해서 봤는데, 역시 한국 사람이었다.
예전에 나리타공항에서 도쿄로 들어올 때가 한국에서 놀러온 20대 젊은이가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일본 시내 전철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한국과 일본이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이런 점에서 분명 문화적 관습의 차이가 있다. 일본사람들이 한국에 어른을 공경하는 모습이 남아있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내려오는 길. 아소산은 봄이나 가을에 하이킹으로 올라오면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넒은 평원도 있고, 말들이 풀을 뜯기도 해서 평화로워보였으나, 12월말인 이날은 너무 추워서 차로 빠르게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 아소산 정상 근처에서 신사가 있다.
아소산 관광을 끝으로 아사쿠사와 구마모토 주변 관광은 끝났다. 아소역으로 가서 오이타행 버스를 기다렸다.
- 렌트카가 아닌 이상 아소역에서 나카다케를 가야 한다.
-아소 역에서 발견한 분화구 정보 관련 안내 표시
규슈에 내려오기 전 여행계획을 짤 때 벳푸에 가서 묵으려고 했으나, 벳푸의 호텔은 관광지라 그런지 저렴한 호텔이 없어 오이타시로 호텔을 잡았다. 오이타에서 벳푸까지는 전철로 한 정거장. 11분 거리다.
밤 7시경 아소역에서 버스를 타고 오이타 중심가에 예약한 호텔에 도착!
호텔은 1인당 4천엔인데 시설이 고급이라서 마음에 들었다. 물론 인터넷도 오케이. 무선 인터넷도 가능했다.
저녁을 못 먹었기 때문에 밖으로 나왔는데 연말임을 감안해도 중심가가 너무 썰렁했다. 도심과 지방간의 격차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 오이타현 중심가. 도쿄의 중심가라면 가장 붐비는 이때, 사람도 많지 않고 많은 가게가 8시 전에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