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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이야기, 일본 오타쿠의 힘!
모리 카오루의 세계, 섬세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김봉석 (문화 평론가)

천재도 즐기는 사람은 당할 수 없다, 는 말이 있다. 절대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어떤 의미로는 확실하게 일리 있는 말이다. 그리고 전제조건이 있다. 그냥 즐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재능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면 시간이 흐를수록, 게으른 천재보다는 즐기며 전진하는 범재가 앞설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요는 끝없는 노력이다. 그 끝없는 노력을 좀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즐기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한 것이고.

<엠마>의 모리 카오루가 그린 신작 <신부 이야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귀족 가정과 메이드의 일상과 사랑을 그렸던 모리 카오루는 <신부 이야기>에서 19세기 중앙아시아로 향한다. 첫 장을 열면, 결혼 장면이 나온다. 예복을 차려 입은 20살 신부의 모습. 그런데, 그 예복이 정말 화려하다. 헌데 <신부 이야기>를 계속 넘기다 보면 딱히 예복만이 아니다.

모든 옷에는 고유의 문양이 들어가 있고, 여자들은 금속붙이 장신구를 몇 개씩이나 걸고 있다. 그리고 융단. 복잡한 문양의 융단이 여기저기 벽에 걸려 있는가 하면, 갖가지 문양을 나무에 새기는 장인도 등장한다. 한마디로, 복잡하고 손이 가는 그림이 <신부 이야기>에는 매 컷마다 수없이 등장한다. 스크린톤만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직접 다 그려내야만 하는 그림말이다.

그래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건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겠구나. <신부 이야기>의 후기를 보면 모리 카오루는 중학교 시절부터 메이드와 함께 실크로드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말과 양, 천막, 융단에 열광적으로 빠져들어 전시회를 가고, 사진집을 사고, 엄청나게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메이드도 마찬가지다. <엠마>를 보면서 감탄했던 것은, 그 섬세한 심리와 깊이 있는 캐릭터 때문만이 아니었다. 모리 카오루는 한없이 공을 들여 <엠마>의 그림을 그려냈다. 엠마가 메이드복을 입는 장면을 몇 페이지에 걸쳐 섬세하게 그려낸다던가. 빅토리아 시대 연회장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살려내는 <엠마>는 그림만으로도 풍요로웠다. <엠마>가 즐거움을 줬던 이유 하나는, 모리 카오루의 독특하고 고집스런 취향이었다.

▲ 신부 이야기     ©모리 카오루

<신부 이야기>는 12살의 신랑 카르르크 메이혼에게 시집간 스무살의 신부 아미르 하르갈의 이야기다. 활을 들고 토끼 사냥을 나가고, 목재에 조각을 하고, 유목하는 친척을 찾아가는 등 일상적인 에피소드와 함께 아미르를 되찾아가겠다는 하르갈 가문과의 갈등이 진행된다. 사실 <신부 이야기>는 <엠마>처럼 확실하게 눈에 뜨이는 매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엠마>의 배경인 19세기 영국은 신흥계급이 부상하고, 기계문명이 사회를 장악하면서 모든 가치와 질서가 흔들리던 흥미진진한 곳이었다.

그에 비하면 <신부 이야기>는 다소 심심하다. 부족간의 갈등 정도는, 19세기 영국에 비하면 평화 그 자체다. 그런데도 <신부 이야기>를 읽다 보면 서서히 빨려 들어간다. 모리 카오루의 재능은 단지 그림만이 아니다. 모리 카오루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사람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어떻게 타인의 마음에 들어서게 되는지를 너무나도 섬세하게 포착한다. 아마도 아미르는 절대 카르르크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어떻게 친정과 싸우면서도 화해할 것인가, 가 궁금해진다. 물론 <신부 이야기>의 진짜 매력은 그 갈등만이 아니라 섬세한 캐릭터들이 살아가는 일상 그 자체이지만.

모리 카오루는 아미르의 캐릭터를 만들면서, 중앙아시아가 아니면 내놓을 수 없는 인물로 창조하려 했다고 말한다. 명궁, 연상의 아내, 야성, 순진, 강하다, 하지만 청순, 하지만 양갓집 아씨 등을 몽땅 아미르에게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자기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작품에 몽땅 불어넣어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오타쿠의 힘일 것이다. 자기가 무엇인가에 열광하여 끝까지 파고들고, 그것을 다시 작품에 쏟아 부어 보통 사람들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르는 것.

최근 <에반게리온>을 리빌드하고 있는 안노 히데아키가 바로 그렇다. 오타쿠 사천왕이라 불릴 정도로 지독한 오타쿠인 안노 히데아키는 친구들과 함께 가이낙스를 만들어, '우리가 보고 싶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자'란 일념으로 <왕립우주군> <톱을 노려라>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을 제작했다. 그리고 <에반게리온>은 세기를 뛰어넘는 걸작으로 거듭나고 있다.

<신부 이야기>를 엄청난 걸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보면서 감탄하게 된다. 모리 카오루가 얼마나 그 대상에 헌신하고 매혹되었는지, 그가 얼마나 노력을 해서 이 그림을 그려냈는지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적당 적당히 팔릴만한 작품만을 생각하거나 반짝하는 아이디어에만 기대지 말고, 모리 카오루와 안노 히데아키처럼 그들의 열정에 감탄할 수 있는 작품이 더욱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즐기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성실한 작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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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7/06 [09:33]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확실히 신부이야기를 보면 惡意 12/03/06 [14:16]
감탄하게 됩니다.
스토리도 좋구요. 작중에 아미르와 새신랑이 서로 대구하며 읊는 시 또한 일품이죠. 음음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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