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준 자동차, 장동건 참이슬, 전지현 샴푸까지......
일본 CF에 처음으로 한국어가 그대로 사용된 것은 2005년 장동건이 출연한 진로소주 참이슬 CF의 카피 "참이슬 주세요"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이 말이 유행하며, 참이슬 소주는 '장동건= 참이슬'이라는 공식적인 애칭을 얻었고, 한국의 서민술 이미지와는 다르게 고급술 이미지로 대히트를 기록했다.
지난 2004년 겨울연가 열풍 이후, 일본방송계에서는 한류스타 CF 기용이 활발해졌다. 욘사마 배용준을 필두로, 한류 4대 천왕이라 불리운 장동건, 송승헌, 원빈에 권상우, 지우히메 최지우에 이르기까지, 드라마 한류스타를 중심으로 CF 러브콜이 이어졌다.
최근에는 제 2 한류붐의 원동력이 된 케이팝 아이돌 열풍이 불면서 신한류스타, 아이돌에게 CF의 관심이 옮겨졌다. 현재 일본 내 공중파에 흘러나오고 있는 한류스타 CF만 해도 동방신기&소녀시대의 세븐일레븐(편의점), 장근석으로 대박난 서울막걸리, 카라의 LG 재팬 옵티머스 스마트폰, 현빈의 옥수수 수염차 등 수 없이 많다.
일본 내 기업 혹은 상품 광고에서 한류스타가 각광을 받은 것은 약 6~7년 정도. 그럼 한류스타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일본 CF에 출연하게 되며, 또 어떤 대우를 받고 있을까? 배용준 자동차부터 장동건 참이슬까지 일본 내 한류스타 CF를 담당해온 세계적인 광고회사 하쿠호도의 캐스팅 사업본부 사사모토 아키히코(40) 씨에게 들어보았다.
우선 하쿠호도에 대해 조금 설명을 덧붙이자면, 1895년에 설립된 광고회사 '하쿠호도'가 성장한 것으로, 100년이 넘게 일본 광고업계를 이끌어 온 광고대기업이다. 매출규모로는 전세계 7위라고 하니 얼마나 많은 광고를 취급해왔는지 알 수 있다.
그런 하쿠호도에서 아시아 스타 캐스팅을 담당하는 사사모토 씨가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5~6년 전. 한국 유학생을 통해 한국 대중문화를 소개받고 클론, 엄정화의 노래를 들으며 흥미를 가지고 한국어 공부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2004년 겨울연가 붐이 일었고, 일본기업 쪽에서도 한류스타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한류스타 CF 캐스팅이 시작되었다.
"2004년 배용준의 자동차 CF를 제주도에서 촬영했고, 2005년 장동건 주류 광고를 담당했습니다. 또 이병헌 씨와는 저희가 팬클럽 관리를 맡아줄 정도로 오랜 인연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음료 CF에 김태희 씨, 샴푸 광고에 전지현 씨가 출연했고, 스마프 쿠사나기 츠요시와 최지우 씨가 함께 촬영한 공익광고도 진행했습니다."
사사모토 씨는 한국 외에도 아시아권 내 스타 캐스팅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성룡이나 최근 대만스타 비비안 수의 일본 샴푸 CF 등을 담당하기도 했다.
"중국은 갑자기 성장하는 회사가 많아 광고도 기업 대표가 딱 찍어서 원하는 스타를 기용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의 경우는 CF에 출연할 5-10명의 스타 후보군을 놓고 그 중에서 최종적으로 한 명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죠. 결정을 할 때 혹시 후보자 중에 동종업계 CF에 출연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조사를 하게 되는데, 중국 스타들은 결정되지도 않은 CF에 후보자가 되는 것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한국은 일본과 중국의 중간이라고 할까요?"
광고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도 한, 중, 일 3국의 차이는 확실하게 나타난다는 것이 사사모토 씨의 설명이다.
보통 한국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가 CF 출연료인데, 일본 CF에 출연하면 한국보다 훨씬 많은 계약금을 받으리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는 CF 1편당 억 단위 계약금을 지급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일본에서는 이 정도 금액을 이야기했다가는 광고주가 놀라 뒤로 넘어가기 십상이다.
한국의 이름 좀 알려졌다는 스타들은 최소 5억원 이상에 특 A급 스타들은 10억원을 호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가수 서태지는 한 때 국내 1위인 약 20억 원 CF 스타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전 일본 한 매체에서 보도한 일본스타 CF 출연료 랭킹에 따르면, 일본에서 10억 원대 개런티를 받는 스타는 국민아이돌 그룹 스마프와 아라시 정도로, 그룹이 아닌 단독으로는 골프신동에서 현재는 국민남동생 급 인기청년 이시카와 료(20세)가 유일하다. 그 외에는 최상위 클래스도 5억원 선이다.
2008년 리먼쇼크 이후, 일본의 경제 불황은 광고업계에도 그 영향이 미쳤다. 이로 인해 CF 제작비나 출연료도 크게 낮아졌다. 일본내 특 A급 스타 몸값도 편당 1억원 이상 삭감되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이야기. 사정이 이렇다보니 아무리 잘 나가는 한류스타라도 일본 내 CF 개런티는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한다.
사사모토 씨는
"한류 초기에는 일본 내 홍보를 위해 출연료가 한국 수준에 미치지 않아도 출연하는 한류스타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만, 최근에는 좀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한국에서 이 정도 받고 있으니 같은 수준으로 맞춰주었으면 좋겠다라고 요구하는 스타들이 늘었죠. 그런데 한국 수준의 출연료를 광고주에 제시하면 다들 깜짝 놀랍니다" 라며 애로사항을 털어놓았다.
또한, 지금은 좀 안정되었지만, 1차 한류붐 때는 한류스타 매니저를 사칭하는 브로커 사기도 횡행했다고 한다.
어떤 날은 "나 한류스타 C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인데, 소개해주겠다"며 하쿠호도에 직접 전화가 걸려왔다. 겨울연가 열풍으로 한참 주가를 올리고있던 C씨를 소개해준다니 반가운 일이었지만, 소속사에 문의해보니 전화한 사람은 전혀 모르는 관계없는 사람이었다.
또 한번은, 일본의 어떤 양복광고에 모델 출신 배우 한류스타 K씨가 모델로 등장했다. 광고에는 양복을 사면 추첨을 통해 1000명에게 2박 3일 서울여행권과 K씨가 출연하는 이벤트에 참가할 수 있다는 특전까지 있었다. 뭔가 어설프기 그지없는 이 광고는 결국 허위로 판명이 났고, 신문 전면광고로 나오던 양복광고는 3일만에 사라져버렸다.
겨울연가 붐 이후, 일본에는 이런 식으로 한류스타 관계자인 척 행세하며 브로커, 에이전트 비지니스를 하는 일부 사기꾼들이 횡행, 한류붐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일본 한류발전 및 한류스타 CF 기용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민감한 한일관계 문제다. 특히, 일본인 역시 독도 영유권 문제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가령 어떤 스타가 과거 한국에서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했다거나, 독도 문제에 대해 언급했을 경우, 이 스타를 일본 기업 CF에 기용하면 "왜 반일스타를 모델로 기용했는가"라는 클레임 전화가 걸려오기 일쑤다.
실제로 현재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걸그룹 소녀시대의 경우, 방송 리허설 때 '독도는 우리땅' 노래를 부른 장면이 유튜브에 게재되어, 소녀시대 기사가 나올 때마다 '독도 동영상'을 문제시하는 일본 네티즌들이 존재하고 있고, 얼마전 일본에 데뷔한 6인조 남성그룹 비스트도 예전에 한국 TV에서 잠깐 '독도는 우리땅' 이라고 발언했던 영상이 떠돌아 다녀, 일본 내 혐한 세력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일본 CF계에서 주목도가 높은 한국 최고 미녀스타 김태희도 마찬가지다. 원래대로라면 지우히메, 최지우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김태희이지만, 오래전 독도 사랑 캠페인에 김태희, 이완 남매가 함께 참여했다는 것이 일본에 알려지면서 루머에 루머가 더해져 '김태희=반일스타'로 인식하는 일본인이 적지 않다.
그저 인터넷 루머에 지나지 않느냐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기업의 이미지를 책임지는 CF 모델에게 루머는 치명적이다. 실제 이제까지 한류스타를 CF 모델로 기용한 기업 중에는 "왜 일본 기업광고에 한국사람을 쓰느냐"며 클레임 전화가 쇄도한 기업도 다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류스타들의 일본 CF 진출이 활발한 이유는, 역시 일본 내에서 인기가 있고 출연만으로도 CF가 세인들의 화제가 되기 때문이다.
"한류스타의 경우 저희가 광고주에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광고주가 직접 한류스타에 대해 관심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까지 광고효과가 가장 좋았던 한류스타는 역시 배용준 씨입니다. 광고라는 것이 좀 더 많이 알려진 사람일 수록 더욱 화제가 되니까요. 요즘 인기요? 소녀시대와 2PM? 물론 동방신기는 예전부터구요"
마지막으로 일본 내 한류의 발전가능성에 대해 사사모토 씨는 "한동안 지속되지 않을까요"라며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중국의 경우, 중국 내부에서 충분한 시장규모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해외진출 필요성을 못 느끼는 데 비해, 한국은 시장규모가 작은데다 정부에서 해외진출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활동에 훨씬 유리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매니지먼트 시스템은 점차 세계시장을 향한 형태로 발전해나가고 있어, 앞으로 더욱 기대가 된다는 전망이다.
단, 문제는 일본 내에서 현재도 케이팝, 한류에 대해 "거품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 음반이 잘 팔리고 TV 노출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일본 쇼프로그램 TV에 나왔을때 시청률이 증가는 보이지 않아 "매니아적인 인기는 아닌가", "그저 일시적인 관심이 아닐까"라는 의심의 시선도 있다. 이 인기가 계속될 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져나오는 광고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헐리웃 스타가 출연하는 CF를 보는 것도 이제는 흔한 일이 되었고, 일본 스타 아무로 나미에가 출연하는 콜라 CF를 한국인 시청자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만큼 대중문화와 광고는 국경이 없어진 지 이미 오래 됐다.
그러나 한일간의 대중문화 교류에는 아직도 넘어야 할 장벽이 많아보인다. 이에 대한 해결방법은 역시 이렇게 현장에 있는 한일 양국 사람들이, 직접 겪고 느끼는 경험을 공유하면서 조금씩 실패를 줄여가가면 되지 않을까. 물론 서로의 문화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해 나가는 것이 우선 순위지만 말이다.
(참고: 이 글은 지난 20일에 열린 일본 도쿄 한류문화발전협의회에 특별 강연을 한 하쿠호도 캐스팅사업본부 팀리더 사사모토 아키히코 씨의 '한국 탤런트의 일본 광고 기용 상황과 문제점' 강연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 ※ 이 기사에 사용된 사진들은 모두 제이피뉴스에서 독자적으로 입수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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