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두 개의 도쿄 한인회가 드디어 하나로 통합됐다. 하지만 아직은 ‘미완성 통합’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4일 오후 4시 30분, 신주쿠 소재 한인회 사무실에서 김옥채 요코하마 총영사의 주재로 ‘일반사단법인재일본한국인연합회’ 김운천 회장과 ‘재일본한국인 연합회’ 육종문 회장이 서로 손을 맞잡았다. 두 회장은 김총영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두 단체가 하나가 된다는 ‘통합 합의서’에 사인을 했다.
▲ 왼쪽부터 육중문 회장 김옥채 총영사 김운천 회장 순 ©J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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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는 ‘일반사단법인재일본한국인연합회’의 유금상 이사장, 박경진 부회장, 노진수 사무총장이, ‘재일본한국인연합회’에서는 이기도 부회장, 류경인 부회장, 정용수 사무총장이 참석해 지켜봤다. 통합 과정 중간에 조옥제 고문과 구철 고문이 참석해 마지막까지 함께 했다.
이 날 합의된 내용은 총 7개 사항이다.
△재일한국인 사회의 친목과 화합의 창립정신과 단결을 최우선 과제로 확인한다 △11대 회장과 집행부가 서로 존재 한다는 것을 인정하며 양측의 조직과 재무를 포함하여 대등하게 통합한다
△양측은 합의하여 차기 신임회장을 추대한다
△추대가 어려울 경우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하여 신임회장을 선출한다
△‘일반사단법인재일본한국인연합회’는 양측의 임시 이사회 개최 이 후 즉시 법인 등록 취소 절차를 신청하고 통합한인회의 공식 명칭을 ‘재일본동경한국인연합회’ 로 정한다
△통합한인회는 ‘일반사단법인재일본한국인총연합회’의 존재를 인정하며, 총연합회 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본 합의서의 이행 절차는 정관 및 회칙에 의해 진행한다. 단 통합협의위원회가 합의하여 결정하는 부분은 예외로 한다
이로써 지난 2년간 한인사회가 둘로 갈라져 논란이 됐던 두 조직이 일단 하나가 됐다. 앞으로 양측은 서로 협의를 통하여 신임 회장을 선출하고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한다.
하지만 이날 분위기에서 알 수 있듯 완전히 하나의 조직으로 거듭나기까지에는 ‘지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위의 7개 항목을 합의하는 데 있어서도 양측 한인회는 몇 차례 수정 작업을 거쳐야 했다. 각자의 입장과 주장이 판이하게 다르다 보니 합의해야 할 내용이 많았다. 다행히 양측이 조금씩 양보해 7개 사항으로 압축, 합의를 도출해 냈지만 후에 문제가 될 내용도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가령 6번 항목에 ‘통합한인회는 ‘일반사단법인재일본한국인총연합회’의 존재를 인정하며, 총연합회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력한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는데 이는 나중에 문제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왜냐하면 재일본한국인연합회(회장 육종문)와 일반사단법인재일본한국인연합회(회장 김운천)는 비록 하나가 둘로 갈라진 단체지만 총연합회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엄연히 독립된 단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연합회를 인정하고 협력하라는, 강제하는 듯한 문구가 들어가 있다. 보는 이에 따라서 ‘월권’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는 대목이다.
제 3의 단체에 대하여 그 존재를 인정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이번에 통합된 새로운 한인회가 판단해 결정하고 협력할 문제이지, 문서 항목에 ‘일반사단법인 재일본한국인총연합회’를 콕 집어 넣어 협력해야 한다고 강제할 그 어떤 권한도 명분도 없다. 이번 두 단체의 통합에 ‘재일본한국인총연합회’가 관여할 아무런 자격이 없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 명료하다.
애시당초 한인회가 두개로 갈라진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재일본한국인총연합회’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원래 이 단체의 최초 명칭은 ‘재일본한국인연합회중앙회’였다. 8-9대 회장을 지낸 구철 씨가 자신의 임기를 마치고 2020년 11월 17일에 새로 결성한 단체다.
그의 구상인 즉, 민단처럼 도쿄에 중앙 본부를 두고 그 산하에 지방조직을 두어 전국적인 한인회 조직망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도쿄뿐만 아니라 한인회가 ‘전국구’가 되어 어떤 행사나 일이 있을 때, 지역간의 정보가 공유되어 소통이 용이하고 친목도모가 원활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구상은 좋았지만 타이밍이 문제였다. 자신의 한인회 회장 임기가 끝나자 얼마 안되어 이름마저 비슷한 단체가 생기다 보니 한인사회 여론이 들끓었다. 긍정적인 호응보다는 그에 대한 비난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인회를 계속해서 자신의 손아귀에 넣기 위한 ‘옥상의 옥’을 만든 것이 아니냐는 등의 말들이 무성했다.
각 지방의 한인회에서도 가입하느냐 마느냐로 의견이 분분했다. 사실 정보 하나, 소통 한 번이라도 아쉬운 지방 한인회의 경우, 이 같은 단체의 등장은 대단히 반가운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호응 또한 지방별로 온도차를 보였다. 단 모든 정보가 모이는 대도시인 도쿄 소재 한인회나 오사카 한인회는 굳이 새로운 단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이 단체의 성격과 활동 내용이 기존의 한인회와 너무나 흡사한 이유도 있었다. 때문에 ‘옥상의 옥’이라는 인식이 강해 그래서 당연하지만 한인회는 이 단체에 가입하지 않았다.
한편 ‘재일본한국인연합회중앙회’는 이후 단체명 중에서 ‘중앙회’를 빼고 대신 일본 전국을 아우르는 의미의 ‘총’자를 넣어 ‘재일본한국인총연합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결국 이 단체명이 또 갈등의 씨앗이 됐다. 그것은 기존 한인회의 명칭이 ‘재일본한국인연합회’이었기 때문이다. 한인회 이름에서 가운데 ‘총’자만 없었지 두 단체의 이름이 거의 똑같았다. 당연하지만 재일본한국인연합회의 반발이 거세졌다.
그럼에도 ‘재일본한국인총연합회’에서는 기존의 한인회가 도쿄한인회로 이름을 바꾸고 총연합회 산하로 들어오길 원했고, ‘재일본한국인연합회(회장 김재욱)’는 20년이 넘는 한인회의 정통성을 들어 이를 거부했다.
이 때 구철회장이 이끄는 총연합회와 기존의 한인회가 서로 갈등을 빚지 않았다면 작금의 분란도 없었을 터.
그런 차제에 11대 한인회 회장 선출 문제가 터졌고 두 후보자 중 현역인 김재욱 회장에 맞선 이가 바로 ‘재일본한국인총연합회’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육종문 씨였다. 육후보자는 기존의 ‘재일본한국인연합회’를 ‘재일본동경한국인연합회’로 한인회 이름을 바꿀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문제는 두 후보자들의 자격과 자질이었다. 육후보자 측에서는 김재욱 회장의 학력사칭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했고, 김회장 측에서는 한인회에서 알아보는 이보다 모르는 이가 훨씬 더 많은, 활동 경력이 채 2년도 되지 않는 육후보자의 자격 미달과 그의 개인적인 자질 문제를 거론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의 정도를 벗어난 비난과 인신 공격이 난무했다. 오랜 친구간의 깊은 우정도, 선후배간의 예의도, 인간관계의 의리가 모조리 실종된 채 ‘구철파’, ‘한인회파’로 양 진영이 나뉘어 상대방을 헐뜯고 비난했다. 선을 넘는 서로의 인신 공격도 서슴치 않았다.
여기서 당시 한인들이 구철파, 한인회파라고 뭉그트려 불렀던 것도 두 후보자에게 본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 때 육후보자는 한인사회 뿐만 아니라 한인회에서조차 알아보는 이가 별로 없을 정도로 거의 무명씨에 가까웠다. 그리고 구철 회장이 뒤에서 전면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아, 그러다 보니 정작 주인공인 육후보자의 존재는 사라지고 대신 ‘구철파’라 지칭했다.
현역 회장이었던 김재욱 후보자 역시 그 존재감은 육후보자와 대등소이했다. 김회장도 한인회 회원 외엔 한인사회에 거의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그의 이름보다는 그냥 한인회를 통칭한 ‘한인회파’로 대변했다.
전임 회장들 역시 ‘구철파’, ‘한인회파’로 나뉘었다. 김희석, 조옥제, 구철 전 회장 이 육종문 후보자를 밀었고, 박재세, 이옥순 전 회장이 현역 김재욱 회장을 지지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22년 6월 17일, 대부분 육종문 후보 지지자들이 모인 긴급 이사회에서 그가 11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그러자 즉각 김재욱 회장 측에서 반발이 일었다. 급기야는 재일본한국인연합회 임원을 중심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전희배)가 꾸려지고 8월 23일, 민단 대사관 등에 ‘6월 17일에 치러진 회장선거는 원천무효’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대내외적으로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비상대책위원회는 재일본한국인 연합회를 일반사단법인으로 등록하는 한편, 김운천 사랑의 나눔의 회 대표를 11대 회장으로 추대하고 9월20일, 리갈로얄 호텔에서 취임식과 함께 또 다른 한인회를 출범시켰다.
이로써 20여년의 역사를 지닌 한인회는 완벽하게 두 개로 나뉘어졌고 서로가 정통성을 지녔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육종문 회장 측에서는 일반사단법인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제는 법정에까지 두 단체가 나란히 선 것이다.
그렇게 지난 2년 동안 두 개의 한인회가 도쿄에 존재했다. 그만큼 한인들의 피로감도 쌓여갔다.
문제의 한인회는 2001년 5월, 뉴커머 1세대인 김희석 조옥제씨가 중심이 돼 민단 중심인 재일동포 사회를 벗어나 신정주자로 일컬어지는 뉴커머들의 권익과 친목 도모를 위해 결성된 민간 단체다. 1-2대 회장은 김희석, 3-4대 조옥제, 5대 박재세, 7대 이옥순, 8-9대 구철, 10대 김 재욱 회장이 한인회를 이끌었다.
초창기 한인회의 출범은 미미했으나 뉴커머들이 급증하면서 그 존재감도 짙어져 갔다. 특히 삼삼오오 몰려 영업하던 신주쿠 쇼쿠안도리의 한국 점포들이 오오쿠보 도리로 대폭 확장되어 가면서 한인회 규모도 점점 커져 갔다. 오오쿠보 도리가 명실공히 ‘코리안 타운’으로 정착되어가는 동안, 한인회의 활동도 다양해지고 한인을 대표하는 기관으로서의 권위나 위상도 함께 높아져 갔다. 더러 임원들간의 갈등이나 약간의 분란, 잡음이 일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이었고 이내 봉합되곤 했다. 적어도 2022년 6월 17일 전까지는 말이다.
아무튼 4월 4일, 두 개의 조직이 하나가 되는 매우 의미있는 화해의 장임에도 이날 참석자들의 얼굴 표정은 대단히 어둡고 어색하고 싸늘했다. 그 동안 양측이 서로 대립하고 비난하면서 갈등하는 과정에서 켜켜이 쌓인 앙금 때문인지 모두들 웃고자 했으나 정작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양측의 통합을 주재한 김옥채 요코하마 총영사는 그간의 진행 과정을 상세히 밝혔다.
“지난 1월 19일 김운천 회장을 만났습니다. 여장부 스타일로 두 세시간 이야기하면서 통합에 대한 진정성을 느꼈어요. 그리고 후에 조옥제 고문을 만났고 육종문 회장과도 만났습니다. 합의 초안을 만들었고 몇 번 수정을 거쳐 4월 1일에 최종 합의서를 만들었습니다. 솔직히 양측 모두 맘고생이 심했을 거에요. 이제 앙금을 풀고 화해를 바랍니다. 윤덕민 대사께도 보고를 했어요. 고맙다고 얘기를 하더군요. 앞으로 숫자는 힘입니다. 새로운 집행부에서는 매사 행사에 많은 인원이 참석할 수 있도록 열심히 뛰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일관계가 나빠지면 민단보다도 여러분의 한인사회가 더 많은 피해를 볼 것입니다. 정부에서도 여러 이벤트를 생각하고 있고 대사관도 공관장도 앞장서고 또 여러분들도 참석해서 같이 모든 걸 이뤄나가야 합니다. 앞으로 몇 년 후면 한인회가 재일동포 사회의 대표가 될 것입니다. 기대가 커요. 5월 이 후에 요코하마로 여러분들을 초대하겠습니다.”
김총영사는 올해 2월, 오랫동안 분란이 있었던 민단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중재자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 교민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에도 그의 중재로 두개로 나뉘어진 한인회의 통합을 전격적으로 이루어 낸 것.
이렇듯 지난 2년동안 한인사회를 들끓게 했던 두 쪽난 한인회가 마침내 하나가 되는 첫번째 절차를 마쳤다. 하지만 서로 합의해 하나로 도출해야 할 문제들이 한 둘이 아니다. 우선 당장 신임 회장을 선출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거론되는 후보자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또한 한인회의 명칭을 바꾸고 총연합회에 가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양측 회원들의 의견 일치를 봐야 한다. 김운천, 육종문 두 회장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로 통합하기로 한 만큼, 그 동안의 앙금을 털어내고 양보를 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터. 앞으로가 주목되는 관점이다.
마지막으로 양측의 회장과 임원들의 통합 소감을 들었다.
“서로 하나가 돼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합의된 여러 사항 중에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갈지 추후 이사회를 열어서 마무리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많은 조언을 해주십시오, 육회장님 빠르게 결단 내려주신 점 대단히 감사합니다. 구철 회장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는 웃음이 가득한 한인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김운천 회장).”
“지난 2년동안 저는 교민들에게 부끄러웠습니다. 교민들에게 봉사하는 그것만 생각했고 또 선후배님들이 사감이 들어가지 않는 순수한 마음, 한인회가 만들어 졌던 초창기의 마음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보는 것과 세상 사람들이 보는 것이 달라 그동안 주변의 눈초리가 따가웠습니다. 앞으로 선후배님들이 잘 이끌어 갔으면 좋겠습니다(육종문회장).”
“사실 총연합회 때문에 이런 사단이 나 솔직히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다 떠나서 육회장, 김회장 모두 그동안 맘고생이 심했는데 수고 많으셨습니다. 두분이 큰 결단을 내려 주셨듯이 저희 총연합회도 열심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겠습니다. 아까 총영사께서 말씀하셨듯이 뼈가 부러져서 다시 붙으면 더 튼튼해진다고 하는데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의미있는 이 자리에서 모든 걸 툴툴 털고 앞으로 나아갑시다(구철회장).”
“앙금이 있어도 풉시다. 서로 안 좋으면 교민들도 불편해합니다. 가능하면 불편한 관계 더 이상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조옥제 고문).”
“두 회장님 참 힘든 결정을 하셨습니다. 많은 걸 내려 놓고 결정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의 차이가 어떻게 비쳐지는가에 따라 가치관도 달리하는구나라는 것을 이번에 느꼈습니다. 앞으로 고문님들끼리도 서로 흉금을 터놓고 오픈 마인드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이기도 부회장).”
“서로 양보와 이해가 있어서 통합이 될 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구철 회장 때문에 한인회에 가입했었는데 그동안 마음이 참 많이 불편했습니다(유금상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