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엔저 경향이 지속되면서 수출 대기업의 실적은 사상최고치를 연이어 경신하는 가운데, 여러 심각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일본의 국력 쇠퇴도 현저하다.
이에 일본 지상파 TBS방송국이 엔저가 계속되고 일본의 국력이 저하하는 원인과 배경을 분석에 눈길을 끈다.
도요타 자동차는 5월 8일, 전년도 연결 결산을 발표했다. 매출액은 45조 엔을 넘어섰고 영업이익도 5조 3500억 엔에 달하며 두 부문에서 모두 사상최고치를 경신했다.
역대급 실적을 낸 데에는 신차 판매가 증가함과 더불어 기록적인 엔저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엔저는 수출기업에게 득이 되지만, 서민들의 삶에는 여러 악영향이 있다.
올해 일본의 황금연휴, 해외 여행길에 오른 일본인들은 떨어진 엔화가치를 실감해야 했다. 엔고가 한참이었을 때 일 엔화 가치는 달러당 7~90엔대였으나 최근에는 150엔대를 넘어서고 있다. 1달러 지불에 사용되는 엔화가 1.5배 이상 오른 것이다.
일본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도 엔저는 괴롭다. 29세 필리핀 여성 헤이젤 씨는 TBS의 취재에 "매년 엔저가 지속돼 힘들다. 생활할 돈도 부족해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녀는 월수입 약 20만 엔으로, 매월 5만 엔 이상을 필리핀의 가족들에게 송금하고 있는데, 엔저 탓에 송금해야할 돈이 늘어났다.
"매달 5만 엔을 보내곤 했으나 지금은 그 돈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헤이젤 씨가 근무하는 가사대행 회사의 직원은 약 120명으로 전원이 필리핀인이다. 엔화의 영향으로 퇴사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퇴사한 이들은 캐나다, 호주 등 더 나은 환경으로 이주했다.
일본의 수입물품의 가격도 폭등하고 있다. 화석연료 등 에너지 자원 가격도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엔저의 부작용이 잇따르자 일본정부와 일본은행은 비공식 환율 개입을 시행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일시적이었고, 엔저 경향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엔의 가치가 줄면서 국력을 나타내는 GDP 등의 지표도 하락하고 있다.
일본의 GDP는 미국에 이어 세계2위였지만 중국에 뒤처진 데 이어 지난해에는 독일에도 따라잡혔다. 이제 내년에는 인도에게도 따라잡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다.
1인당 GDP의 경우에는 G7국가 중 가장 낮은 세계 34위까지 추락했다.
노동자의 실질 임금도 오르지 않았다. 물가는 오르고 있으나 물가만큼 임금이 상승하지 않으면서 일본 노동자의 실질 임금은 올해 3월까지 사상최장인 24개월 연속 감소를 기록했다.
이처럼 엔저, 국력저하의 배경에 대해 가야 게이치 경제 평론가는 TBS의 취재에 "90년대 이후 세계 경제의 룰이 크게 변화했다. 글로벌 규모로 사업을 전개하는 경향, 그리고 IT, 디지털화다. 일본기업의 대부분이 이러한 동향을 캐치하지 못하고 80년대까지의 스타일을 계속 고집했다. 이것이 큰 실패의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은 글로벌화 속에서 변화를 꾀하기 보다는 기존의 주력 상품을 기존의 잘하던 방식으로 판매를 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후 아시아 각국과의 격렬한 저가 경쟁 속에서 일본의 이러한 방식은 더이상 통하지 않았다.
또한 80년대에 일본이 세계를 선도하던 반도체 분야에서는 기존의 주력 분야를 고집한 나머지 고부가가치 첨단분야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했고, 지금은 반도체 분야에서 일부 소재 분야를 제외하고 거의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90년대 이후 세계경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일본이 현재의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는 게 TBS사의 취재분석이다. 엔저로 인해 일본의 국력저하가 더욱 눈에 띄는 상황이다보니 이러한 유형의 기사가 최근 자주 눈에 띄고 있다.
사상최대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오랜 제로금리에도 이루지 못했던 인플레이션 2% 목표를 달성해냈지만, 일본은 이제 오히려 지독한 엔저상황과 국력저하에 괴로움을 겪는 처지가 됐다. 엔저로 전체 국부의 규모는 인도에게 따라잡힐 지경이다.
일본 정부는 어떻게 균형을 잡아내야할지 고심 중이다. 명확한 해답은 없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한 시점이다. 과연 일본은 앞으로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