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해 일반인을 폭행한 행동으로 아사쇼류는 은퇴를 선언했다. 산케이신문(2월 5일자)은 어제 은퇴를 표명한 아사쇼류가 "일반인 폭행사건으로 인해 어떤 비판을 받아도 변명의 여지는 없으나, 스모 안팎으로 희대의 악역이면서도 그 만큼의 존재감을 과시한 간판스타였음에 분명하다."라고 보도했다.
아사쇼류는 스피드와 기백 넘치는 스모로 다이호(大鵬), 지요노후지(千代の富士)에 이은 일본 스모 사상 역대 3위로 우승 25회를 기록했다. 2005년 연간 6회 바쇼(시합)를 전부 제패했으며 7연패 기록은 사상 최초다. 2007년 같은 몽골 출신 리키시 '하쿠호'가 요코즈나로 승진하기까지 21회 바쇼(시합) 연속으로 단독 요코즈나로 군림했으며 스모계의 기둥을 맡았다.
한편, 스모 경기장 밖에서는 시끄러운 사건들이 반복됐다. 가장 비난을 받은 것은 2007년 7월 '축구 소동'(아프다는 이유로 연습을 뒤로하고 몽골에 일시귀국했으나 건강하게 축구시합에 참가한 영상이 일본에 보도, 꾀병의혹이 일었다)으로 정점에 달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우행을 거듭할수록 그의 존재감은 더욱 높아만 갔다는 사실이다. '축구 소동' 때문에 여름 순행(巡業)을 쉬었으나, 그 후 주목을 모았던 순행에서는 연일 많은 관객이 찾았다. 출장정지가 풀린 2008년 첫 시합도 성황을 이뤘으며, 첫 시합으로는 10년만에 7일간 흥행에 성공하게 된다. 전통을 파괴해가는 이단아로서 혐오감을 드러내는 관계자가 적지 않았지만, 그들도 뒤에서는 "인기가 있고 스모계로서도 필요한 존재","최대의 상품이다."라는 말로 속내를 토로한 것도 사실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아사쇼류의 존재감은 스모계에서 멈추지 않았다. 소동을 일으킬 때마다 때때로 1개월 이상이나 스포츠지 1면이나 tv의 와이드쇼를 장식하는 스포츠 선수는 예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신문은 "그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으면서도 미움을 산 아사쇼류의 은퇴를 안타깝게 생각하게 될 날은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라며 쓸쓸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2월 5일자, 산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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