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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섬, 일본을 흔들어 깨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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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의 3.1절 연설문을 교재로 썼다가 해고된 마스다 선생을 만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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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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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노무현 대통령의 3.1절 연설문을 학교 수업 토론 시간에 교재로 썼다는 이유로 면직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면직 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한국분들로부터 많은 지지와 성원을 받아 힘이 났습니다."
마스다 미야코 전 구단중학교 교사(60)가 지난 1월 말 '한국 강제 병합 100년' 공동행동 일본실행위원회 결성 모임에서 연단으로 나와 특별보고를 하면서 한 말이다. 일본도 아닌 한국의 대통령이 '대한독립만세'를 목놓아 외쳤던 3.1절을 기념해 발표한 연설문의 어떤 점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일까. 이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한국의 대통령이 직접 일본국민의 양심에 호소한 것이 처음이었고, 그 내용 또한 솔직했기 때문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3.1절 연설문의 진정성은 마스다 교사가 진행한 지상토론(紙上討論) 수업시간에 답장 형식으로 쓴 중학교 3학년의 글을 보면 보다 생생하게 느껴진다. "대단히 훌륭한 연설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진실과 성의로써 양국 국민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진정한 이웃으로 거듭나야 합니다.'라는 말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연설문을 읽고 저는 일본인으로서 한국과 진정한 우호관계를 깊게 하고 싶습니다."(구단중학교 3학년 학생 g.s) "우선, 무엇보다도 '국민을 소중히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노 대통령은 상냥한 분이구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그 상처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대해서 혐오감을 내지 않고 상냥하게 대해 주시는 것에 정말로 감동했습니다. 앞으로도 일본과 한국이 여러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천천히 사이가 좋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구단중학교 3학년 학생 j.s)
▲ 마스다 미야코 전 구단 중학교 교사 ©jpnews/ 코다 타쿠미 | | 그러나 마스다 교사는 이웃나라 대통령의 연설문을 학교 수업교재로 썼다는 이유로 지난 2006년 3월 면직이 됐다. 연설문을 수업교재로 쓴 지 1년만이다. 해직이 된지 4년이 다 되가는 지금도 그는 여전히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이 아주 근사하다(とても素晴らしい)고 말한다. 마스다 교사는 면직 후 도교육위원회의 처분이 부당하다며, 면직 무효 소송을 도쿄지법에 냈으나 지난해 6월에 패소했다. 그러나 곧바로 항소를 제기, 끝까지 자신의 행동이 정당함을 굽히지 않고 싸움을 진행 중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이한 올해는 보다 많은 사람에게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jpnews는 도쿄 인근 지바현 아비코에 있는 자택에서 마스다 교사를 만나 그의 '힘겹지만 당당한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일본 역사를 제대로 알려고 하다 보니 마스다 교사는 1973년부터 도쿄에서 중학교 사회과를 맡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도 처음부터 일본과 한국의 근대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던 교사는 아니었다. 평범한 교사 중 한 명이던 그는 아이들에게 근현대사를 가르치기 위해 역사공부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메이지 유신 이후의 침략사, 그리고 덴노(天皇)의 전쟁책임과 범죄성에 대해서 알게 됐다. 혼자서 공부하게 되면 일본의 보수세력이 말하는 논리에 빠져들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보통 역사학자는 성실한 사람들이라서 일본의 과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책을 보고 제대로 공부를 하면 진실을 알게 되고 식민지 문제를 청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죠." 즉, 7-80년대만 해도 일본 역사학계에서 우익적인 흐름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에 제동이 걸린 것은 1995년 발표된 무라야마 담화부터다. 무라야마 담화란 사회당 출신의 총리가 전후 50년을 결산하면서 발표한 내용으로 과거사에 대해 일본의 침략을 인정하는 사죄가 담겨있었다. 일본총리가 공식적인 사과를 발표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이후 일본 우익은 위기감을 갖게 됐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결성되는 등 기억을 둘러싼 싸움이 시작된다. 새역모는 일본의 침략 등의 과거를 가르치는 것을 자학사관이라고 명명하고, 애국심을 갖게 하는 역사관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침략전쟁을 미화할 뿐만 아니라 일본이 식민지배를 함으로써 상대국에 좋은 일도 했다는 식의 내용을 우익학자를 동원해서 적극적으로 사회에 흘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마스다 교사가 본격적으로 한국과의 문제를 인식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역시,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이 종군위안부였다고 밝히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아 이건 정말 과거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문제구나라고. 그전까지는 한국에 군사정권이 계속되고 있었고 김대중 납치 사건 등으로 조금 무서운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종군 위안부 문제는 1990년 1월 한겨레 신문에 '정신대 취재기'가 발표된 이후 일본사회에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김학순 할머니는 직접 일본에 와서도 증언했다. 마스다 교사는 나중에 이 문제를 가지고 학생들과 지상토론(紙上討論)을 진행했다. 지상토론이란 마스다 선생이 고안한 수업방식으로 미리 준비한 비디오나 자료를 보고 학생들이 다음 수업시간까지 자신들의 감상이나 생각을 적어내는 수업을 말한다. 마스다 교사의 제자들은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일본 근현대사를 이 수업을 통해 접하게 된다.
▲ 마스다 미야코 교사 ©jpnews / 코다 타쿠미 | | 그가 이 지상토론을 진행한 것은 어느 사건 때문이었다. 1988년 12월 모토시마 히토시(本島等) 나가사키 시장은 시의회에서 "히로히토 덴노(天皇)에게도 전쟁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발언했다. 당시 히로히토가 위독한 상태로 일본은 덴노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 자숙 모드에 휩싸였기 때문에 이 발언은 크게 언론에 클로즈업됐다. 이로 인해 우익단체들이 강력히 항의, 발언 철회를 요구했으나 모토시마 시장은 거절했다. 결국 1개월 후인 1989년 1월 시청사 현관 앞에서 우익단체 간부로부터 저격당해 전치 1개월이라는 중상을 입었다. "일본의 근현대사를 배우고 나면 그 근본에는 덴노의 범죄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덴노에 대해 발언하면 '안전하지 않다'는 것과 또 빨갱이(赤)라는 말을 듣고 공격을 당하기 때문에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런 내용을 가르칠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가사키 시장이 전쟁 책임에 관한 말을 조금 했다고 해서 피격당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더 이상 제 자신이 그동안 공부한 것을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지상토론은 1개월에 한번씩 진행했다. 지상토론은 종이에 자신의 생각을 적는 것이므로 생각을 깊게 한다고 마스다 교사는 말한다. 그러나, 유토리 교육이 시작되면서 사회과 수업이 주 4시간에서 주 3시간으로 줄어들면서 지상토론도 1학기에 한,두 번으로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꾸준히 교과서가 말하지 않는 역사적 진실을 지상토론을 활용해 가르쳐왔다. 그러던 1997년 6월, 오키나와 미군기지에 대한 지상토론 수업을 계기로 고통을 겪게 된다. 수업 내용을 본 학생 어머니가 '반미교육'이라며 항의를 한 것이다. 이 학부모는 미국인과 결혼한 여성으로 마스다 교사가 '잘못된 내용을 가르쳤다."고 주장했다. "그때, 지금 정말로 현안이 되고 있는 후텐마 미군 기지 등의 문제를 다뤘어요. 물론 지상토론에서 나온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소개했어요."
도교육위원회는 어떻게 미군기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만으로 강제연수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일까. 교육위원회는 처음부터 마스다 교사의 지상토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1997년 졸업식 기미가요 제창때 마스다 교사가 가르친 제자들이 기립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지 않은 적이 있었다. 학생들은 기미가요(君が代)가 '덴노(天皇)의 세상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졸업식 때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도 교육위원회는 이것이 '마스다 교사의 편향교육의 탓'이라고 단정짓고 그후부터 제재할 기회를 계속 노리고 있었다고 한다. 마스다 교사는 '불기립문제'로 전근을 당했고, 같은해 6월 미군기지 지상토론 내용이 문제시하면서 교육위원회가 칼을 빼든 것이다. 산케이신문 또한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불을 붙였다. 마스다 교사는 결국, 99년 7월 징계처분을 받고 9월부터 학교가 아닌 연수센터로 출근하게 되었다.
연수센터는 그에게 '공무원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적으시오.' 등 과제나 작문을 시키는 것으로 2년 반의 시간을 보내게 했다. 그 후 그 이상의 처분할 명분이 없자 다시 교단으로 되돌려보내게 된다. 물론, 왜 다시 복귀시키는가에 대한 이유도 교육위원회로부터 들을 수 없었다.
마스다 교사가 다시 교단에 돌아온 것은 2002년 4월, 야스쿠니 신사 근처에 있는 구단 중학교였다. 물론 지상토론은 다시 재개했다. 그리고 운명의 2005년 3월 1일.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한 연설문의 번역문이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메일로 소개됐다. 이와나미 서점이 펴내는 잡지 '세카이'(世界)에도 나왔다. "때마침 학교 역사수업 거의 끝나는 시점이라, 아 이 연설문은 매우 좋은 교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편지형식이라면 학생들이 쓰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해서, 여러분 노무현 대통령에게 답장 편지를 써봅시다라고 했죠. 그런데, pta(학무모 회의)의 부회장 아버지가, 야스쿠니 신사 관계자로 알고 있는데 도쿄 교육 위원회에 학교에서 과연 이런 수업을 해도 되는가라며 항의를 했어요." 도 교육위도 마침내 마스다 교사가 수업시간에 만든 '노무현 대통령에 보내는 편지'의 내용을 문제시 했다. 이 인쇄물에는 '일제가 주변국을 침략한 사실이 없다'는 도의회 문교위원의 망언과, 후소사판 역사교과서를 '역사위조주의'라고 비판하는 대목이 들어 있다. 교육위는 마스다 교사가 이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교사의 신용을 떨어뜨렸다며 또 다시 징계 처분에 들어갔다. 이로써 마스다 교사는 다시 2005년 9월부터 연수센터로 출근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그날은 그가 영영 학교현장을 떠나는 날이 됐다. 연수센터에서는 보다 노골적인 징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앞서 99년에 징계처분을 받았을 때는 일반적인 공무원 자격에 대해서 지적받았으나, 이번에는 노골적으로 '이런 수업을 하지 말라'며 교육내용에 대한 반성문을 쓸 것을 요구받았다. 하루 8시간, 자리를 벗어난 시간까지 감시를 받았다. 그렇게 계속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다가 2006년 3월에 면직 처분됐다. 기자가 그렇게 계속 굴복하지 않으면 해직이 될 거라는 것을 알았을 텐데 두렵지 않았느냐고 묻자, "무섭기는 했지만, 그것에 굴복하면 제 스스로가 자신의 교사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이 됩니다. 만약 굴복해 반성문을 쓰고 학교로 돌아갈 수 있다 한들, 제가 교단에 설 수 있겠어요. 저는 그저 진실을 가르친 것 뿐입니다." 라며 이상할 것이 없다고 답했다.
▲ 마스다 미야코 교사 자택에서 ©jpnews/ 코다 타쿠미 | | 마스다 교사는 2006년 9월에 면직처분이 부당하다며 재판을 걸었으나 작년 6월 도쿄지방재판소에서 패소해, 7월 고등법원에 항소한 상태다. 그의 이런 외로운 싸움에 아사히 신문 등 자칭 진보적인 언론은 보도하지 않았고, 교원노조도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기미가요, 히노마루 문제에 대해서는 언론사에서 다뤄도 특별히 우익이 쳐들어오거나 하지 않지만, 저는 우익들이나 도의회 의원들이 표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다루면 그걸 문제 삼아서 항의하러 올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한국의 한 언론사 도쿄특파원은 이런 것이 바로 일본사회의 집단 괴롭힘이라고 한다. 천황제(天皇制) 등 일본사회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는 사람은 진보건 보수건 가차없이 선 밖에 밀어 내친다는 것이다. 소송 비용은 면직 후 받은 33년간 적립한 퇴직금을 깨서 댔으나, 아직 변호사 비용을 지불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 올해부터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생활은 어떻게든 꾸려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에 고등재판소, 최고재판소까지 갈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일본 매스컴이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것은 일본의 역사인식의 낮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우선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이해 우선 식민지 지배에 대한 역사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실제로 현재 지바현 아비코 시, 가나가와현 오다와라 시, 도쿄도 스기나미구에서 매월 한 번씩 '시민 강좌'를 열고 근현대사를 가르치고 있다. "일본인도 바보가 아니니까 반성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르니까 반성을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강좌를 들으신 분들 중에 그런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일본인이 역사를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학교 수업 시간에 메이지 유신 이후 역사에 대해서 거의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배워도 주마간산격으로 대충 훑고 지나간다. 시험에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가르치는 선생도 모르는 게 현실이다. 마스다 교사는 일본에서 그런 것을 모르는 것이 살아가기에 안전하다고 자조했다. 일본의 역사교육현장은 근현대사 부분만 놓고 보면 거대한 망각의 섬인 것이다. 그는 이것에 구멍을 내고 싶어했다.
▲ "싸우는 사회과 교사" 마스다 미야코 교사가 쓴 책 ©jpnews / 코다 타쿠미 | | 그동안 가장 괴로웠던 것은 무엇이냐고 묻자, "괴로운 것은 별로 없었어요. 세계가 훨씬 넓어졌고, 면직이 안됐으면 그냥 평범한 교사로 끝났을 것"이라며 웃는다. 마스다 교사의 싸움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 일본에서 5000여명, 한국에서 6000여명이나 면직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에 동참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사람들에게 “일본인 이상으로 나에 대해서 말 뿐아니라 정말 격려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모르는 것을 알리는 활동을 계속하겠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진실된 화해를 이룰 수 있도록. 일본인 이상으로 한국분들에게 감사하는 기분입니다." 라며 인터뷰를 끝냈다. 인터뷰 내내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한 마스다 교사. 그를 와세다 봉사원 스콧홀에서 처음 만난 날, 귓속에 강렬하게 꽂힌 말이 아직도 떠오른다. "저는 면직된 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누가 그에게 이런 용기를 주었을까. 그것은 바로 역사의 진실이 가리키는 무언(無言)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마스다교사의 싸움은 진정한 한국과 일본의 화해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끝>
▲ 노무현 대통령 연설문 중 자신이 감명받았다고 하는 부분을 가리키고 있다 ©jpnews/코다 타쿠미 | |
▲ 유관순 열사의 사진을 들고 설명하고 있는 마스다 미야코 교사 ©jpnews /코다 타쿠미 | |
▲ 일제 강제 징용 사진 등 106매를 가지고 전시회를 통해 식민지에 대해 알리고 있다. ©jpnews /코다 타쿠미 | |
▲ 가쓰 가이슈. 청일전쟁 반대했으며, 한국과 일본, 청나라가 힘을 합쳐서 서양과 싸우자고 호소했다. 마스다 교사는 격변기에 한일 우호를 위해 노력한 사람도 소개하고 있는 등, 학교교육에서 가르치지 않은 것을 알리고 있다. ©jpnews /코다 타쿠미 | |
▲한국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일본 실행위원회 결성모임에서 마스다 미야코 선생이 특별보고를 하고 있다 ©jpnews /야마모토 히로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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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2/18 [11:00] 최종편집: ⓒ jpnews_co_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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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 기사입니다. |
푸른나라 |
10/02/18 [1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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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의 근대사 교육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데, 이 기사로 해결이 되었네요! 몰라서 반성할수 없다는 말 실감합니다. 면직철회 서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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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사회과 교사 |
Nicholas |
10/02/18 [1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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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News에서 민간차원의 한일교류행사를 다룰때, 자주 등장하는 마스다 선생님. 그녀의 활동은 이미 알고 있는 한국이나 일본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에 대해 무엇을 고쳐 배워야 할지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 만날 수 있어서 기뻐요. 그 사회의 금기(禁忌)는 무엇일까요? 그 사회 주류가 힘으로 설정해놓은 한계선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것은 거의 대부분 현재보다는 과거와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구여. 만약 그렇다면 그 힘은 늘 위기감이나 불안을 내재하겠지요. 그 힘이 드러내는 폭력으로 유지(결속)되는 사회. 그러나 그 힘은 공동체 사회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자주 배반하는지를 목격할 뿐이지요. 그들의 욕망(국내)을 위해, 그들의 약점(국외)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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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니 |
10/02/18 [1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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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사 잘 보았습니다.. 마스다 선생님의 소신이 승리하시길 응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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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노무현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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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18 [13: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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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주년 삼일절 대통령 기념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내외귀빈 여러분, 여든 여섯돌 3.1절 기념식을 이곳 유관순 기념관에서 갖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날의 감동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3.1운동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 나라의 자주와 독립의 권리를 천명한 3.1정신은 지금도 인류사회와 국제질서의 보편적인 원리로 존중되고 있습니다. 또한 상해임시정부에서 오늘의 참여정부에 이르는 대한민국 정통성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3.1운동의 위대한 정신을 이어나가고, 다시는 100년 전과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애국선열에 대한 도리이자 3.1절에 되새기는 우리의 다짐입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민주주의와 번영의 초석을 놓아주신 애국선열들께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독립유공자와 가족 여러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지난 일요일, 독립기념관을 다녀왔습니다. 구한말, 개화를 둘러싼 의견차이가 논쟁을 넘어서 분열로 치닫고, 마침내 지도자들이 나라와 국민을 배반한 역사를 보면서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아울러, 우리 땅을 놓고 일본과 청나라, 러시아가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힘없는 우리가 어느 편에 섰던들 무엇이 달라졌겠는가를 생각하며, 국력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이제 우리는 100년 전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아무런 변수도 되지 못했던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세계에 손색이 없는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이루고 스스로를 지킬만한 넉넉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북아의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국방력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선열들께서도 지금 우리의 모습을 대견스러워 하실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올해는 한국과 일본의 국교정상화 40주년이 되는 특별한 해입니다. 한편으로는, 한일협정 문서가 공개되면서 아직 해결되지 못한 과거문제가 되살아나 또 다른 어려움이 제기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동안 한일관계는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상당한 진전을 이뤄왔습니다. ’95년 무라야마 일본 총리는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했고 ’98년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가 신한일관계 파트너십을 선언했습니다. 2003년에는 나와 고이즈미 총리가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위한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한일 두 나라는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함께 열어가야 할 공동운명체입니다. 서로 협력해서 평화정착과 공동번영의 길로 나아가지 않고서는 국민들의 안전과 행복을 보장할 수 없는 조건 위에 서 있습니다. 법적, 정치적 관계의 진전만으로 양국의 미래를 보장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할 일을 다 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 이상의 실질적인 화해와 협력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진실과 성의로써 양국 국민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진정한 이웃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프랑스는 반국가행위를 한 자국민에 대해서는 준엄한 심판을 내렸지만, 독일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손을 잡고 유럽연합의 질서를 만들어왔습니다. 지난해 시라크 대통령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60주년 기념식에 처음으로 독일 총리를 초대해서 “프랑스인들은 당신을 친구로 환영한다”며 우정을 표했습니다. 우리 국민도 프랑스처럼 너그러운 이웃으로 일본과 함께 하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국민의 분노와 증오를 부추기지 않도록 절제하고, 일본과의 화해 협력을 위해서 적극적인 노력을 해왔습니다. 실제로 우리 국민은 잘 자제하고 사리를 따져서 분별 있게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동안의 양국관계 진전을 존중해서 과거사 문제를 외교적 쟁점으로 삼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과거사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교류와 협력의 관계가 다시 멈추고 양국간 갈등이 고조되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방적인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두 나라 관계 발전에는 일본 정부와 국민의 진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과거의 진실을 규명해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배상할 일이 있으면 배상하고, 그리고 화해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 세계가 하고 있는 과거사 청산의 보편적인 방식입니다. 저는 납치문제로 인한 일본 국민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합니다. 마찬가지로 일본도 역지사지해야 합니다. 강제징용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이르기까지 일제 36년 동안 수천, 수만 배의 고통을 당한 우리 국민의 분노를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일본의 지성에 다시 한번 호소합니다. 진실한 자기반성의 토대 위에서 한일간의 감정적 앙금을 걷어내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데 앞장서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선진국임을 자부하는 일본의 지성다운 모습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과거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경제력이 강하고 군비를 강화해도 이웃의 신뢰를 얻고 국제사회의 지도적 국가가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독일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만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 진실을 밝히고 사과하고 보상하는 도덕적 결단을 통해서 유럽통합의 주역으로 나설 수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한일협정과 피해보상 문제에 관해서는 정부도 부족함이 있었다고 봅니다. 국교정상화 자체는 부득이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 국교를 단절하고 지낼 수도 없고, 우리의 요구를 모두 관철시킬 수 없었던 사정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피해자들로서는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청구권을 일방적으로 처분한 것을 납득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 노력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의 의견을 모으고 국회와 협의해서 합당한 해결책을 모색해 나갈 것입니다. 이미 총리실에 민관공동위원회를 구성해서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좀 더 포괄적인 해결을 위해서 국민자문위원회 구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청구권 문제 외에도 아직 묻혀있는 진실을 밝혀내고, 유해를 봉환하는 일 등에 적극 나설 것입니다. 일본도 법적인 문제 이전에 인류사회의 보편적 윤리, 그리고 이웃간 신뢰의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3.1운동의 정신을 되새기면서 선열들이 꿈꾸었던 선진한국의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갑시다. 일제의 총칼에 맞서 일어섰던 선열들의 용기와, 모든 것을 뛰어넘어 하나가 됐던 대동단결의 정신이 우리의 앞길을 이끌어 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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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분입니다 |
감사합니다 |
10/02/18 [14: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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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들의 목소리가 일본 사회에 더욱 더 커지고 세지기를 바랍니다. 보도해주신 제이피 뉴스에도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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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입장에선 대단하신 분.. |
힘내시길 |
10/02/19 [05: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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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입장에서는 묻어두고 싶은 이야기일 겁니다.
사회의 통념에 거스르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인데.. 힘든 길을 가시네요.
한국이나 일본 모두 인정하는 바른 역사인식과 그로 인해 한일우호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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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선생님 |
월광 |
10/02/19 [0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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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인의 본보기를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부디 소송을 통해서
부당한 처사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 졌으면 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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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
에르네스토 |
10/02/19 [1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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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많은 사람들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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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용기있는 분이군요 |
대갈장군 |
10/02/19 [17: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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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용기 있는 분이 이 한국에도 많아졌으면 합니다. 이미 많으시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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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도 진짜 지성인, 교육자가 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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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19 [2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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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그런 사람들을 탄압하는 것도 똑같군요... 마스다 선생님 같은 분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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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을 부끄럽게 하는 일본 교육자의 양심 |
배경그림 |
10/02/19 [2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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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오로지 돈만 보고 살아 온 기업인들이나 졸부들이 이런 분 좀 화끈하게 후원하면서 속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신의 잘못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용기가 그 사람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 같습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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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느 곳이든 이런 분이 더 많아지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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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20 [1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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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에서 저 정도의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라 한들 얼마나 될까. 일본의 과거사 문제는 단지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같이 하고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 저 분이 이 일로 많이 힘들지 않고, 세상에 대해 씁쓸한 마음을 갖지 않고 생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용감한 사람이라 한들 일상의 작은 일에 상처를 받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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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라는 나라... |
역사의 진실 |
10/02/22 [03: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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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침략 전쟁등의 근현대사를 가르치면 자학사관이 되는건가? 그럼 독일 이탈리아는 자학사관이냐?? 나치,침략미화 같은거 하면 독일이나 유럽에서는 매장당한다. 잡혀가. 사람들이 가만않놔둔다. 그런데 일본과 해방후에도 친일파들이 계속 존속하고 득세해온 한국에서는 기미가요,일본 침략 미화 정당화,욱일승천기, 일본 군복패션 등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쓰여지고 있다. 이건 정말 고쳐야될 대상인데... 우리가 이상한거냐? 아니면 과거 역사의 진실된 인식과 청산을 제대로 하는 독일 프랑스등의 유럽이 이상한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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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드립니다. |
마쓰다선생님께 |
10/02/22 [1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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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과서 왜곡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의 양심있는 분들이 나서서 광고비용까지 지불하면서 자국의 교과서 왜곡에 대하여 지면광고를 통해 비판하셨습니다. 마쓰다 선생님같은 분들이 있는 한 한국과 일본의 신뢰는 굳건하게 다져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쓰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양국의 신뢰가 발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힘내세요, 마쓰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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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늘무너미 |
10/02/23 [15: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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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 선생님의 정신세계에 존경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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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난다. |
ㅠㅠ |
10/02/24 [11: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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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기념사 다시 보니 감동이네요.. 이런분을 돌아가시게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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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사람 |
ㅂㅂㅂ |
10/02/26 [2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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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타 같은 친일파가 넘치는 한국에도
이런 사람은 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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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혹시...? |
3255 |
10/02/28 [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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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의한 한반도 강점,식민통치는 어쩔수 없었던 거다. 힘쎈 나라가 힘없는 나라를 강점하던 것은 그 시대엔 당연한 것 이었다.' 그래서 제국주의 시대라고 불리우던 때 아니었나? 어차피 조선은 어딘가에 먹힐 나라였고 그 어딘가 가 일본 이었을 뿐이었다.일본을 욕 할 것 없다."
우리나라 사람중 누군가 가 이런 주장을 편다면 위에 댓글 다신분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혹시..일본의 우익들과 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을까? 위의 댓글들이 알량한 애국주의,국수주의 때문인지 진보적 이성 때문인지 정말 궁금하다. 나 말고도 궁금한 사람들 많쵸?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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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게 사과를 받아내는 법! |
쉬운문제 |
10/03/01 [2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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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물건들 수입 안하면 바로 사과 할 겁니다.
우리나라가 해외로 수출하는 많은 제품들 중에 일본제 원료와 부품
안들어가는 제품이 별로 없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수출을 많이 할 수록
일본으로 부터의 수입은 증가하는 경제구조를 한국은 구축하여 왔습니다.
아무리 한국제품이 세계 1위라고 하더라도, 분해해 보면, 핵심 부품 중
일본 부품 한개 정도는 꼭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일제 식민지 시절에
도 일본을 먹여 살리고, 오늘날에도 일본을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일제 되도록 구입하지 맙시다. 대신 국산이나 다른 나라 제품을
구입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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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
나비 |
10/03/10 [1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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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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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헛소리 했던 양반 |
봉건 일본 |
10/03/13 [2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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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대학원까지 역사를(서양사)를 전공했습니다...세계역사 주류학계가 잘못된 것이라고 인정한것을 일본이 깡다구로 버티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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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있는 일본의 시민 |
의식이있다 |
10/05/22 [00: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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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의 어떤 단체보다 더 역사의식이 뛰어난 일본인..놀랍다. 더욱 많아 지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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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감정의 시초는 일본 항공기가 독도위로 무단 영해침범에서 시작했다. |
망각의시대 |
10/06/10 [1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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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인 영토분쟁으로 부각시키기위해서.. 이에대한 기사는 어디에서도 볼수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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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스럽습니다. |
ㅋ... |
10/07/04 [1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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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건 어렵잖아도
자기자신을 던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죠.
그것도 스스로의 결단으로 말이죠.
존경하고 닮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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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분탕질 |
양심 |
15/12/22 [1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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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주장을 할 수도 있겠지요.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은 그 당시가 역사가 되어 흘러갔고 문제는 그 기간 동안 일본이 우리에게 가했던 일들에 대해서 일본 정부가 은폐하고 조작하고 있다는 거죠. 이게 우익들 반응입니까? 잘 모르거나 혼자 생각하다 보면 논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죠. 우리나라든 외국이든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에게 욕부터 해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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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역사교육 |
상투바람 |
15/12/22 [2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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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야코 선생에게 응원과 존경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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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가카와톡 |
15/12/23 [0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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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지만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 마스다상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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