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의 생활이 어언 10년을 넘었다.
일본에 대한 실체적이고 잠재적인 요소들이 비로소 눈에 담겨오고 이제 겨우 귀에 들려오는 듯하다.
오랜 역사의 동행이 빚어낸 굴곡을 바탕으로 가깝고도 먼 나라인 한국과 일본 이 두 나라는 언제나 각 분야에 결쳐 첨예한 대립과 경쟁이 존재하고 있다. 이는 일본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고국의 지인들을 만나거나 일본 현지 생활에서 느껴지는 보이지 않는 감촉 그런 것들이다.
그러나 2002년, 역사적인 한일 월드컵공동개최를 시점으로 일본사회에서는 한국에 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월드컵공동개최라는 이벤트를 활용해 일본의 공영방송 nhk가, 한국 kbs 인기드라마인 '겨울연가'를 방영하면서 예상치 못한 변화의 태풍이 불어왔던 것이다.
평소 일본 내에서도 가장 보수적이고 조용한 목소리를 가졌던 주부들이, 드라마 겨울연가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을 서로 나누는가 하면, 방송국에 직접 전화를 걸어 방영소감을 전달했다.
이 같은 현상은 과거 일본사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를테면 주부들의 반란과 같은 거대한 해일이 어느날 갑자기 일본열도에 불어닥친 것 이다.
이 후, 겨울연가의 주요 촬영지인 한국의 남이섬을 현지탐방하기 위해 주부들이 나리타공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바로 이같은 열정은 또다른 다양한 문화확산을 가져오면서, 마침내 일본열도에 한류의 바람이 태동하게 되는 토대가 되었다.
이처럼 거의 5년 가까이 일본전역에 걸쳐 지피기 시작한 한류의 열풍은, 드라마와 음악은 물론 한국의 음식에서부터 전통풍습에 이르기까지, 믿기 어려울만큼 뜨겁게 휩쓸고 지나갔다.
특히 내가 사는 신주쿠 쇼쿠안 거리는 10여년전만 해도 야쿠자들의 거리로 통했던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전문식당, 서점, 한국드라마 캐릭터 상품점 등 ‘리틀코리아타운’이라고 명명해도 괜찮을만큼 ‘한국거리’가 되어 있다.
바로 이 거리에 다양한 계층의 일본여성들이, 한국문화와 풍습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접하려는 마음으로 찾아오고 있다. 덕분에 쇼쿠안 거리는 짧은 기간 안에 한류문화의 거리로 탈바꿈을 했다.
실제로 이 지역에 재부임한 한 일본은행 지점장은, 전혀 다른 얼굴로 변한 쇼쿠안 거리를 보고 많이 놀랐다고 털어 놓아, 우리문화의 저력에 잠시 내 어깨가 으쓱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인 변화의 바람을 우리는 단순히 상업적 목적으로만 활용해 온 것이 아닌가, 너무 장삿속으로만 치중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요즘 들어 많이 든다. 왜냐하면 일본의 대중사회에 모처럼 깊게 뿌리 내린 한국바람이,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식어가는 느낌을 갖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한 위기감과 회한은 비단 나혼자만이 갖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국제적인 문화교류는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수용, 즉 쌍방의 교류를 전제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 일본에 세차게 불었던 한류열풍은, 일본사회가 한국 문화에 대한 일방적인 수용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바꾸어 말하면, 당시 한류열풍이라는 해일이 일본사회에 휘몰아쳤을 때, 그때 우리 한국도 일본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와 수용하는 태도를 가졌었다면, 지금과 같은 위기의식은 조금 덜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차피 한일 양국은 역사적으로 떨어져서 살 수 없는 공동운명체와 같다. 지리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기도 하면서 무엇보다 의식주 생활이 비슷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제는 현재 쇼쿠안 거리에 한류바람이 예전에 비해 많이 식어 있다는 사실이다.
실례로 내가 경영하고 있는 부동산 사무실에 찾아오는 고객들의 성향을 보면 놀랍게도 유학생이 많다. 전에는 쇼쿠안 거리에서 비지니스를 하는 한국인들이 주류였고, 가끔은 신주쿠 언저리에 주거지를 찾는 일본인도 있 었다.
하지만 요즘은 유학생 일색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쇼쿠안 거리가 그나마 상업지역으로 번성했던 것이 현재는 그것마저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반증에 다름아니다. 쇼쿠안 거리가 번성하면 할 수록 그것은 곧 일본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는 증거 이며, 반대로 이 거리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시들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일본 인들이 찾지 않아 쇼쿠안 거리가 점점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부동산사무실에도 가게를 내놓은 사람은 많아도, 새로운 점포를 찾는 이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결국 어렵게, 어렵게 지펴졌던 한류 열풍이 그만 한국인들의 관리 소홀(?)로 서서히 사장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너무 눈앞의 상업적인 이익만 추구하다 보니 미처 일본인들의 애써 가진 한국에 대한 관심을 무시해 버린 것이다.
이것은 어찌보면 한국인들의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다. 어떻게 찾아온 한류붐인데, 어떻게 지펴진 우리문화 열풍인데 이대로 쓰러져 사라져 가는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는가?
이미 많이 식어버린 한류열풍을 다시 뜨겁게 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이제 우리 모두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일본에 오시는 분들에게 습관처럼 하는 질문이 있다.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가 한국 드라마를 단지 인기 때문에 방영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도 나는 똑같은 질문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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