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간의 규슈 여행.
긴 일정으로 보이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길게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2001년 도쿄에서 처음 대학때 선배를 통해 사코다 씨를 처음 알게 됐다. 그는 구마모토 출신으로 여름 오봉(일본의 추석)때나 연말에는 고향으로 내려가곤 했다. 우리는 10년 동안 알고 지면서 가끔 만날 때마다 언제 한 번 규슈에 같이 내려가서 일본의 연말을 같이 지내보자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예전에 다녔던 애니메이션 회사 상사가 기타규슈출신으로 지금은 귀향해서 그곳에서 살고 있다. 이래저래 규슈에 아는 사람도 좀 생겨서 이참에 내려가서 얼굴도 조금 보고 오려고 했던 참이었다.
문제는 비행기 티켓. 사코다 씨가 규슈<->도쿄 왕복 항공권을 대신 예매해줬는데, 가장 저렴한 티켓을 예약하다 보니 12월 27일부터 1월 5일까지, 10일이라는 기간이 됐다.
일본도 연말 연시는 귀향하는 사람이 많아 피크다. 보통 28일까지는 일본인들도 일을 하는 기간이라 그보다 빠른 27일에 출발해서 정월(お正月)이 다 끝난 5일에 돌아오는 티켓이었다. 그러나 구마모토에만 열흘간 머물 수 없어. 같이 여행을 하는 구간 이외의 일정은 별도로 가족까지 돌아다니기로 했다. 아내와 딸, 나.
규슈를 대표하는 도시를 꼽자면 일본 8대 대도시에 들어가는 후쿠오카, 온천의 대명사 벳푸, 칼데라호로 유명한 아소산과 구마모토성으로 대표되는 구마모토, 서양과의 교역 등으로 유명한 나가사키와 일본 속 유럽이라는 사세보의 하우스텐보스, 사츠마야키 등 도자기로 유명한 가고시마, 그리고 미야자키 등이 있다.
일정상 미야자키는 포기하고, 사코다 씨 가족과 같이 돌아다닐 곳을 제외한 벳푸, 나가사키, 하우스텐보스, 후쿠오카는 우리 가족만의 별도 일정을 짰다.
▲ 아마쿠사는 구마모토 아래에 있는 두개의 커다란 섬으로 야생 돌고래를 볼 수 있다. 지란은 2차세계대전 오키나와를 향해 자살특공대가 출발한 곳으로 기념관이 있다. ©당그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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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하게 일본호텔 예약할 수 있는 곳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잠자리와 식사, 교통비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 전날까지 호텔 예약으로 부산했는데,
http://www.jalan.net/ 으로 대부분 예약했다. 이 홈페이지를 이용하면 당일 취소를 하지 않는 한 캔슬료가 발생하지 않으며 대부분 조식 포함 일인당 4000엔에 저렴한 호텔을 찾을 수 있다. 실제로 묵어본 결과 카운터에서 직접 방을 구하면 6000엔 정도 나오는 호텔들이었다.
호텔은 반드시 아침식사가 포함되어 있는 곳을 골랐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여행을 나서야 오후까지 버틸 수 있었으니까. 벳푸처럼 관광으로 먹고 사는 도시일수록 호텔비가 비쌌고 후쿠오카처럼 대도시라 고를 수 있는 호텔이 많을수록 쌌다. 호텔은 그 도시의 가장 중심가에 가까운 곳으로 되도록 골랐다. 다음날 다른도시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주요역 옆의 버스터미널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가사키,오이타, 후쿠오카 등 규슈의 도시들은 주요역과 버스 타는 곳이 가까웠다.
교통비는 1월 2일날 갈 예정인 가고시마만 당일치기로 다녀와야 했기 때문에 신칸센을 이용했고, 나머지는 3일간 규슈 산큐 프리패스를 이용했다. 규슈는 현재 보통 열차가 거의 안 다니기 때문에 특급열차나 신칸센을 타야 하지만 금액이 매우 비싸다. 가고시마만 하루 다녀오는데 일인당 1만엔이 넘는 비용이 들었다.
산큐 프리패스는 3일간 고속버스뿐만 아니라 시내 모든 버스를 탈 수 있는 이용권이다. 우리는 이 프리패스로 구마모토에서 하우스텐보스, 하우스텐보스에서 나가사키, 나가사키에서 후쿠오카로 이동했고, 각 도시에서도 시내버스를 이용해 움직였다.
▲ 산큐버스 http://www.sunqpass.jp/hangeul/index.shtml ©당그니 | |
이렇게 해서 우리가 정리한 일정은 다음과 같다.
27일 하네다에서 구마모토로 이동, 오후 아마쿠사로 이동. 료칸에서 숙박
28일 아마쿠사에서 배를 타고 화석채취를 할 수 있는 고쇼노우라 섬으로 이동, 오후 야생 돌고래 관람이 가능한 곳으로 이동, 료칸 숙박
29일 아소산 관광 후 벳푸와 가까운 오이타로 이동 호텔에 숙박
30일 오이타에서 벳푸 관광을 한 후 저녁 늦게 구마모토로 돌아옴
31일 구마모토 시내 관광. 일본인 가정에서 새해를 맞음
1월 1일 구마모토성 관람(31일이 구마모토성 휴일인 관계로).
1월 2일 가고시마 신칸센으로 당일치기로 다녀옴. 400년전 임진왜란 때 끌려온 14대 사츠마야키 심수관 씨 만남, 2차세계대전때 자살특공대가 집결해서 오키나와로 떠난 지란 답사
1월 3일 하우스텐보스, 저녁에 나가사키로 이동, 나가사키 호텔에 숙박
1월 4일 나카사키 시내 여행, 저녁에 후쿠오카로 이동, 하카다 역 근처 호텔에 숙박
1월 5일 후쿠오카 시내 여행, 저녁에 비행기로 도쿄 귀경
아마쿠사란 구마모토 아래에 있는 큰 섬을 말하는데, 아이들을 위해 화석찾기, 돌고래관람 등의 이벤트를 포함했기 때문이었다.
27일 아침, 8시 비행기였기 때문에 아침에 서둘러서 집을 나섰다. 하네다 공항에서 사코다 씨 가족과 합류, 구마모토로 떠났다. 비행시간은 1시간 50분 정도. 일본 국내선은 녹차말고는 아무 것도 제공이 안된다. 나는 노트북을 꺼내들고 한반도와 규슈에 대한 감상을 적어넣었다.
▲ 눈 내린 아소구마모토공항 / 구마모토시와 아소산 중간에 있어서 '아소구마모토 공항'이라고 부른다. ©당그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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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어디든 버스,전철에선 쉿!"
구마모토에 도착하니 이곳은 이미 눈이 내렸고, 추웠다. 이르긴 하나 공항로비에는 귀성하는 손자를 보러 나온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눈에 띄었다.
일단 사코다 씨 집으로 가기 위해 아소구마모토공항에서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자 사코다 씨가 한국어로 구마모토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사코다 씨는 도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고, 한국에도 2년간 유학을 다녀온 적이 있다.
사코다 씨가 버스 뒷자리에서 그렇게 한국어로 여러가지 이야기를 설명해주자 2-3칸 앞자리에 앉은 다른 일본인 남자가 시끄럽다는 듯이 기분 나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사코다 씨는 "일본어가 아니라 한국어라 그런 거예요"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스마트폰으로 트위터에 이 내용을 올리자, 일본인 트위터 친구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저는 괜찮은데, 아마 반반인 것 같아요. 외국어이기 때문에, 또 일본인은 대중 교통 수단에서는 조용히 암묵하는 규칙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일본사람들이 공공 교통 기관을 탈 때는 조용히 해야 된다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까요? 그 사람에게 좀 섭섭합니다.(´・_・`)"
"저도 한국어로 이야기 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신기해서 봐 버릴지도 몰라요^^;;"
"아모모리라면 버스 안에서도 시끌벅쩍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저도 얼마 전 어쩌다 버스에서 마주친 분들과 여럿이서 떠든 적이 있었는데요"
"일본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버스 안에서 이야기한다고 욕 먹는 일은 보통 없습니다. 심야버스 이외에는"
일본 전철이나 버스에서는 전국 어디를 가도 전화통화는 삼가달라는 안내방송이 줄기차게 흘러나온다. 그러나 같이 탄 상대와 이야기하지 말라는 방송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휴대전화 통화를 하지 말라는 것이 어느새 전철 안에서는 정숙해야한다는 룰로 바뀌면서 그것에 익숙해지고 이제는 전철 안에서 이야기 할 때도 조용히 하라는 암묵적 룰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언젠가 나도 퇴근길에 도쿄 전철 안에서 두 사람의 노년 샐러리맨이 담소를 나누는 것을, 그 앞자리에 앉아있던 젊은 사람이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조용히 하라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전철이나 버스에서 휴대전화 통화를 하지말라는 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것인데, 그것이 아예 모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룰로 바뀌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공항에서 출발한 버스를 타고 구마모토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도오리초스지에서 내렸다. 눈이 내린 다음날인지 날씨가 흐렸고 시내중심가에서도 멀리 구마모토성이 보였다. 도로 저만치 멀리 눈 덮힌 구마모토성을 보자, 도쿄에 살고 있으면서도 왠지 이국에 온 느낌이었다.
▲ 구마모토 시내. 일본 지방에서는 노면전철을 흔히 볼 수 있다. ©당그니 | |
■ 제이피뉴스에서는 10일간의 규슈 일주에서 보고, 느낀 일본의 모습을 담은 '당그니의 규슈여행기'를 매주 연재합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