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 여행 4일째. 오이타 중심가에서 묵은 호텔(ホテル法華クラブ大分)의 아침은 근사했다. 며칠간 머물던 여관과 달리 호텔식 부페여서 여러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었고, 창가로는 오이타시 앞 항구가 내려다 보였다. 대부분의 일본 도시가 바다를 끼고 발달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벳푸, 오이타시가 있는 오이타현은 일본 만엔짜리 주인공인 후쿠자와 유키치의 고향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140년전 일본이 서양문물을 빠르게 수입해서 자기것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이와쿠라 사절단으로 미국과 유럽을 다녀와서 당시 산업혁명을 거친 신유럽의 새로운 문물은 모조리 메모해와서 '서양사정'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당시로는 초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일본인들이 서양과 근대에 관한 지식을 쌓는데 토대가 됐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이렇게 일본 근대화 사상적 저변을 마련한 사상가였으면서도 갑신정변을 뒤에서 조종하다 실패하자 일본은 아시아를 벗어나서유럽으로 가야한다는 '탈아입구'를 주창한 인물이기도 하다.
후쿠자와는 오사카에서 태어났지만 부모의 고향이 오이타현인지라 1살 반부터 나카쓰번(中津藩, 현 오이타현)으로 이사를 와서 17년간 살았다. 후쿠자와가 서양문물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낸 것은 그가 자란 나카쓰번이 양약에 관해서는 일본에서 가장 먼저 개명된 번이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이미 네덜란드의 해부학책이 일본어로 번역출판(1774년)될 정도였으니까. 1774년이면 메이지유신이 일어난 시기보다 100년이나 빨랐고 후쿠자와가 태어나던 1835년보다는 50년 빨랐다.
그런 오이타현의 중심도시인 오이타시. 그러나 지금은 규슈의 한 지방 중심도시에 불과하다.
(사진- 오이타시 중심가. 연말이라 그런지 아침임에도 거리가 한산했다.)
이 날은 오이타시에서 벳푸로 가는 길에 있는 타카사키야마 자연동물원을 들렀다가 벳푸 온천을 가야했기에 아침부터 서둘렀다.
호텔 프론트에 동물원 가는 방법을 물어보니 친절하게 버스타는 곳을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길래 버스정류장 근처의 다른 분에게 물어보니 반대쪽이라고 한다. 호텔 점원이 친절하게 버스 노선도나 할인티켓을 준 것까지는 좋았으나 잘못 알려주는 바람에 비까지 내리는 가운데 30분이나 소비했다. 여행지에서 조금이라도 낌새가 이상하면 확인할 필요가 있다.
오이타 시내 버스
(사진- 오이타의 버스도 뒤에서 타고 앞에서 버스비를 거리만큼 정산한다.)
(사진- 내릴 때 누르는 벨. 그림이 그려 있어서 한 컷 찍어봤다.)
우리가 이날 오전에 들른 곳은 야생원숭이를 방목하고 있는 타카사키야마 자연동물원이다.
지금 동물원이 된 이 지역은 볼거리가 전혀 없는 곳으로 원래는 산에 들끓는 야생원숭이로 골치를 썩고 있었다. 농작물 피해의 주범이 바로 이 야생원숭이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1952년경, 당시 오이타 시장이 이들 원숭이를 방목형식으로 자연동물원에서 키우도록 하자는 제안을 하면서 유명한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우리도 원래는 이곳에 갈 생각이 없었지만 트위터로 일본인 친구가 꼭 가보라고 해서 들르기로 했는데, 다녀와보니 들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에 대해 무관심한 야생 원숭이. 그들 내 철저한 위계질서. 별로 넓지 않는 공간을 활용해 골칫거리를 오히려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바꾼 아이디어가 인상적이었다.
그럼, 타카사키야마 자연동물원에 같이 한 번 들어가보자.
이날 비가 와고 겨울이라서 원숭이를 제대로 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추위에 떠는 원숭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원숭이는 원래 여름을 제일 싫어하고 안 움직인다고 한다.
절쪽으로 올라가니 비를 피하고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견디는 원숭이들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진- 추운 겨울 오로지 자신들의 체온으로 서로를 덥혀주고 있다. / 어미 등에 달라붙어 있는 원숭이도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관광객은 이들을 만지거나 먹이를 주면 안된다. 그들도 인간인 우리에게 무언가를 구걸하거나 공격하지 않는다.
동물원은 그리 크지 않은데 스태프가 이곳 원숭이들의 특징, 습성에 대해서 설명을 번갈아가면서 계속해준다. 이 동물원에 가장 볼거리가 되는 시간은 원숭이에게 밥을 주는 시간. 이 시간이 되면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원숭이들이 벌떼처럼 몰려든다. 물론 구경하고 있는 관광객 다리 아래로도 지나간다.
(사진- 담당 스태프가 이동하면서 보리를 뿌리고 있다.)
타카사키야마공원에 가려면 오전에 가는 게 좋다. 원숭이 아침 밥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스태프는 작은 보리를 이리저리 다니면서 뿌리는데 한곳에 모아두면 새끼원숭이가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원숭이가 밥 먹는 시간. 동영상을 한 번 보시길.
잘 살펴보면 보스는 큰 나무 등걸에 앉아서 편하게 먹지만 평민(?) 원숭이들은 부지런히 이동해가며 더 많은 보리를 주워먹기 위해 애를 쓴다. 힘이 약한 새끼 원숭이들은 보스 주위에 모여서 보스가 흘린 보리를 주워먹는다. 이것도 삶의 한 방식으로 인간세계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이곳의 원숭이는 대체 몇 마리인 것일까.
타카사키야마에는 현재 b군 526마리, c군 696마리 합계 1,222마리의 일본원숭이가 살고 있다. 이곳은 미야자키현 고지마(幸島)와 함께 일본원숭이 발상지로 알려져있으며 보스원숭이라는 말을 일본에서 처음으로 쓰게 된 곳이다. 원래는 1,000여마리를 거느린 a군 원숭이도 있었으나, c군과 싸움에서 지면서 20여마리로 격감한 뒤 2002년 6월경부터 자취를 감췄다. 원숭이 사회도 철저한 계급사회로 한 번 보스가 되면 죽기전까지 그 원숭이의 권위에 다른 원숭이가 도전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보스가 죽기 전까지 서열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1,200여마리의 원숭이가 서식하고 있는 다카사키산. 산 한 켠에서는 끊임없이 폭죽이 터지면서 삐이...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입구 경비원에게 물어보니 "오전에 동물원에 내려와 있는 그룹 쪽으로 또 다른 그룹 원숭이가 내려오는 것을 막기위해서"라고 한다. 이곳에 사는 원숭이는 b그룹과 c그룹이 하루에 한 차례씩 교대를 하며 동물원에 먹이를 먹으러 산에서 내려온다.
(사진- 새끼 원숭이들.)
(사진- 야생 원숭이는 인간에 관심도 없고 신경도 안 쓴다.)
(사진- 동물원 내에 조그만 모노레일이 있으나, 거리가 가까워 타면 돈 낭비.)
우리는 다음 일정인 벳푸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원숭이들의 세상을 아쉬워하면 동물원을 나섰다.
규슈 여행기 10로 이어짐 - 벳푸 온천 지옥 순례
* 묵었던 호텔. ホテル法華クラブ大分 정보 일인당 하루 4000엔(인터넷 예약했을 경우), 조식, 큰 욕탕 있음. 각 방 유무선 인터넷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