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대 씨 사연을 들은 것은 지난 11일이었다.
기자들끼리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길래 무슨 사연인가 물었더니, 2년 전 일본으로 유학보낸 아들이 갑자기 실종되어 애타게 찾고 있는 아버지가 있는데, 이번에 일본에 입국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그런 일도 있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무렵, 3.11대지진이 터졌다.
진도 7, 매그니튜드 9.0을 기록한 대지진이 일본 동북지방을 덮쳤다. 아오모리현부터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까지 해변가에 인접한 지역들이 거대한 지진과 쓰나미로 쑥대밭이 되었다.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 일이었다. 도쿄에서도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강한 진동을 느꼈으니 피해지의 주민들이 얼마나 놀랐을 지는 상상만으로도 괴롭다.
대지진 이후 도쿄에서도 생활이 크게 바뀌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교통은 마비되고, 물자는 떨어지고, 자체 절전을 실시하는 쇼핑몰 덕분에 도시의 밤은 빛을 잃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여진이 찾아와 지진의 '지'자만 들어도 놀랄 정도였다. 그렇게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을 즈음, 기자들의 입에서 '그러고보니 김상대 씨 센다이 간다고 하지 않았어?'라는 말이 나왔고,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김상대 씨는 분명, 실종된 아들 건으로 11일 센다이 경찰서를 찾아간다고 했다. 센다이시는 이번 대지진에 가장 큰 쓰나미 피해를 입은 미야기현 현청 소재지다. tv에서 중계되는 화면에는 센다이 공항이 쓰나미에 잠겨 처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실종된 아들도 모자라서, 대지진에 휘말리다니...' 그에게 일본은 너무나 큰 불행을 가져다 준 것 같아 안타까웠다. 지진 후 며칠동안 휴대전화가 불통이었으니, 생사확인도 불가능했다.
그렇게 계속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져 있을무렵,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일본 유학생 커뮤니티에 게재한 김상대 씨 글과 전단지를 찾는 것이었다. 아들을 찾는다는 전단지에는 반드시 아버지의 연락처가 적혀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재빨리 사이트를 열어 검색했다. 전단지에 적힌 전화번호 버튼을 누르면서 쉼호흡을 했다. '제발 무사하시기를...'
"여보세요"
벨이 서너번 울리자 굵은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안심했다. 혹여 휴대폰에 다른 사람이 나오면 어떻게 안부를 물어야할지 걱정이 태산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김상대 씨는 무사히 일본을 탈출하여 현재 한국에 있다고 했다.
"제가 센다이 경찰서에 11일 오후 2시에 약속을 하고 면담을 하러 갔습니다. 제가 가져간 자료를 전달하고 요구사항을 이야기했습니다. 면담을 거의 마칠 즈음, 거기가 6층이었거든요. 콘크리트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은 강한 지진이 느껴졌습니다" 지진이 발생한 시각은 오후 2시 46분이었다.
다행히 경찰서 건물은 무사했지만, 너무 강한 지진으로 전기, 수도, 가스가 끊겼다. 도대체 어디서 지진이 발생했는지, 어느 정도의 피해인지 알 수 없었다. tv도 라디오도, 심지어 불도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휴대전화까지 불통이 되었다.
불행 중 다행은 휴대폰이 통화는 안되지만 문자서비스는 되는 것이었다. 그는 급히 "도대체 진앙지가 어디냐, 지진 정보를 알려달라"며 큰아들에게 문자를 넣었다. 아들과의 문자로 사태를 파악하고는 실종된 작은 아들집과 센다이 영사관을 오가며 5일간을 보냈다.
"정보가 없어서 혼란스러워할 때 우연히 한국에서 가져온 mp3에서 nhk 방송이 잡히는 걸 알았어요. 정말 다행이었죠. 불도 안 들어오는 아들 방에서 nhk를 들으면서 지냈습니다. 센다이 영사관은 관청가에 있어서 다행히 전기, 가스, 수도가 끊기지 않았어요. 거기엔 한국 교민들이 100명 넘게 있었어요. 지금은 대부분 한국에 돌아갔겠지만..."
영사관에서는 리무진 버스와 비행기 편을 마련해주면서 교민들을 한국으로 보내주었다. 김상대 씨는 자신은 아들을 찾으러 온 것이라며 급하게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비행기를 양보했다. 그리고 지진으로부터 5일만인 16일 니이가타 공항을 통해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다.
김상대 씨는 아들이 실종된 후에도 줄곧 아들이 살던 센다이 원룸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월세만 한달에 4만엔, 각종공과금까지 합쳐 한달 유지비만 6만엔(약 80만원 상당)이 들지만, 언젠간 아들이 여기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해 쉽사리 해약할 수 없었다고 한다.
아들이 사라진 것은 2008년 10월 30일. 2007년에 동북전자전문학교에 입학해 게임엔지니어과를 다니고 있던 아들은 친구들에게
"도쿄에서 면접이 있어 내일은 학교에 못 온다"고 말한 뒤 모습을 감췄다. 가족과 마지막으로 통화한 것은 2008년 10월 28일. "잘 있냐, 김치 부쳤다"라며 평범한 대화를 나눈 것이 마지막이었다.
지난 2년 동안 김상대 씨의 아내와 처남은 센다이를 수없이 왕복하며 아들 김영돈 씨의 행방을 찾았다. 그러나 아들에게 연락이 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일본 경찰에도 실종신고를 했다. 하지만, 단순가출로 여겨져 수사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영돈 씨는 실종되기 2주일 전 3개 통장에 나눠져 있었던 75만 엔(약 900만원) 상당의 거금을 전부 인출했다. 며칠 후에 남아있던 몇 천엔의 잔고까지 모두 인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일본 경찰은 그저 성인남성의 가출이라고 확신하고 조사조차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단순가출로 보기에는 너무나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고 김상대 씨는 말한다. 몇 번이나 일본경찰에게 수사를 요청했지만, "때가 되면 돌아올 것"이라며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김상대 씨는 주일한국대사관, 한국 경찰의 도움을 요청하여, 2년 여만에 겨우 일본 경찰과의 면담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경찰과의 그 면담일이 바로, 3.11 대지진이 있던 날이었다.
"지진이 있고, 힘들긴 했지만 이번에 저는 일본 경찰에게 제가 요구하고 싶은 것을 다 이야기하고 왔습니다. 제가 원하는 요청사항을 일본어로 작성하여 a4로 제출했구요, '아들을 찾아달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의심스러운 이 시기에 아들이 살아있었는지 죽었는지 생사만이라도 확인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가길 잘 했지요"
김상대 씨가 단순 가출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첫째, 2008년 10월 행방불명이 된 후에도 영돈씨 휴대전화 요금은 계속 변화하며 청구되었다. 어떤 날은 전화하면 바로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고, 어떤 날은 신호가 갔다. 2009년 1월 31일 새벽에는 '이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라며 해약된 것처럼 안내가 되었지만, 휴대폰 요금은 2009년 7월까지 꼬박꼬박 빠져나갔다.
둘째, 계획된 가출이라고 보기에는 가져간 짐이 너무 허술했다. 외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라면 반드시 챙기는 여권도 그대로 있었고, 휴대폰 충전기며 평소에 아끼던 면도기까지 그대로 두고 나갔다. 게다가 실종 직후 찾아갔을 때는 있었던 가전제품이며 짐들이 몇 달 후에 갑자기 사라졌다. tv와 컴퓨터 본체, 가족사진 등이 없어졌다고 한다.
셋째, 아들과의 마지막 통화에서 느낌이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원래도 절약습관이 투철한 아들이었지만, 당시 환율이 워낙 높아져 김상대 씨가 지나가는 말로 "돈 아껴써라"고 말했는데, "으~응?"이라며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에 다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 데, 실종되고 보니 혹시 부모 모르는 돈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김영돈 씨가 자취를 감추고 나서 그가 마지막으로 무엇을 했는지, 실제로 면접은 보러 갔는지, 어디로 갔는지 아는 친구들은 한 명도 없었다. 학교에도 취업기록은 없었다. 그나마 친하게 지내던 한국인 친구 한 명은 뭔가 아는 것 같으면서도 말을 해주지 않았다. 그 친구는 현재 한국에 들어와 김영돈 씨 실종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지만, 특별한 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아이가 2008년 10월 행방불명이 되고나서 한동안 꺼져 있다가, 2009년 1월 휴대폰 요금 5500엔이 청구되었습니다. 이건 분명 누군가 사용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일본 경찰에게 휴대폰 회사와 연결해서 어디에서 누구와 통화를 했는지만 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누가 사용했는지만 알면 당시 영돈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생사만이라도 알고 싶습니다"
상대조차 해주지 않던 일본 경찰이었지만, 이번에야 드디어 김상대 씨가 원하는 수사방향을 전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경찰에서는 휴대폰 회사에 협조해 통화내역 등을 조사해보겠다고 말해준 것.
김상대 씨는 현재 일도 그만두고 둘째 아들 김영돈 씨 찾는데만 열중하고 있다고 한다. 최악의 경우, 범죄에 휘말려 살해되었을 가능성까지도 생각하고 있다는 김상대 씨.
그는 아들을 찾기 위해 센다이에 갔다가 일본 역사에 기록될 강진을 겪었다. 언젠간 돌아올 아들을 위해 월세방을 계속 유지시키고 있고, 남은 인생을 아들을 찾는데 쓰겠다고 한다.
만약, 일본경찰 말처럼 김영돈 씨가 단순한 가출이라면, 그리고 어디선가 이 기사를 읽을 수 있다면 애타는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연락해주기를, 또한, 김영돈 씨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교민이 있다면 하루빨리 연락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영돈 씨를 찾는 포스터]